
작곡가뿐만 아니라 출중한 성악가들도 다른 지역 못지않게 배출된 곳이 강원도다. 주문진 출신의 바리톤 조상현, 영월 출신의 소프라노 강미자, 춘천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김청자는 1970~1980년대 국내외 음악무대를 주름잡던 전설 같은 성악가들이다. 게다가 강원도 양악의 2세대쯤으로 분류할 수 있는 원주 출신의 임헌정과 정치용은 국내 관현악단 지휘의 두 계파를 형성할 만큼 영향력을 행사해 온 지휘계의 큰 스승인 음악가들이다. 여기에 합창 지휘계의 출중한 마에스트로 정남규 원주시립합창단 지휘자까지 포함하면, 강원도는 이제 분명 국내 클래식 음악의 변두리에서 핫플레이스로 자리 바꿈하고 있다고 봐도 지나침이 없다.
또한 시대를 달리해서 정선 출신 소프라노 홍혜란, 철원 출신 소프라노 임선혜, 유년 시절부터 천재적인 기량으로 국내외 피아노 음악계를 놀라게 한 원주 출신 피아니스트 손열음, 균형감 있는 타건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춘천 출신 피아니스트 조재혁, 역시 춘천 출신으로 국내 리코더 음악의 대부 조진희와 그의 출중한 제자 신윤희 리코더 연주가와 신예 리코더 연주가 허영진, 그리고 국내 최정상 트럼페터 성재창 같은 연주가들의 활약은 이제 강원도를 양악의 변방이라고 폄훼할 수 없는 변인(變因)이 됐다.
국내에 양악이 유입된 1880년대를 기점으로 대략 140여년의 양악 역사를 이뤄 온 한국은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클래식 강국이 됐다. 이른바 세계 3대 음악콩쿠르라 일컫는 쇼팽 콩쿠르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빛이 바랜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포함해 권위 있는 국제 콩쿠르의 상위 입상자 대부분이 한국의 음악가들이고, 지난해 미국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까지, 이젠 세계 무대에서 한국 클래식 연주가들의 상품가치가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설립 20주년을 맞는 대관령음악제는 통영음악제와 더불어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음악제의 쌍두마차로 권위와 내실을 견고히 해 가고 있고, 명실공히 강원도의 대표적 고부가가치 문화예술 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동안 클래식 음악의 변두리라고 일컬어져 왔던 강원도가 이제 역설적으로 국내 양악을 이끌어 나갈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는 곳으로 위상이 바뀌고 있는 현실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그러기에 늦은 감이 있지만 10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 온 강원도 양악의 역사를 찬찬히 더듬어 보고, 그 역사를 일궈 온 음악가들을 조명하는 것은 인문학적으로도 매우 유용한 일로 생각된다. 따라서 그 첫 번째 인물로, 강원도 양악의 효시(嚆矢) 홍천 출신 작곡가 하대응 선생을 필두로 ‘강원도 클래식 음악가 열전’을 펼쳐 나가려고 한다.
〈격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