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실정법인 ‘보행안전및편의증진에관한법률’ 제1조 목적에 보면 보행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걸을 수 있는 쾌적한 보행환경을 조성하여 각종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 밝히고 있다. 제4조 국가 등의 책무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행자가 쾌적한 보행환경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자길을 통행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여야 하며, 노인, 임산부, 어린이, 장애인 등 스스로의 힘으로는 보행이 불편한 사람이 차별 없이 보행자길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보행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 최근 강원지역에 급속도로 설치운영 사례가 늘고 있는 회전교차로는 과연 이러한 법 목적에 부합되고, 지방자치단체는 올바른 방향으로 그 책무를 다하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회전교차로는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인 만큼 근접한 횡단보도 역시 신호등이 없다. 보행자는 길을 건너기 위해 그야말로 알아서 눈치껏 재빨리 건너야 한다. 문제는 ‘알아서’ 그리고 ‘눈치껏’ 그리고 ‘재빨리’에 일정 부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아동, 장애인, 어르신, 임산부, 유아 동반 성인에게는 이게 매우 힘든 문제다. 이에 본인 말고는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길을 건너는 것은 곧 목숨을 담보로 길을 건너는 매 순간 아찔한 순간인 것이다.
가령, 시각장애인은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파란색 신호등에 음성신호를 참고해 차량 통행이 일정 시간 없음을 인지하고 안전하게 길을 건너게 된다. 그러나 회전교차로에서는 차량이 비연속적이며 불규칙적으로 통행하고 차량의 접근과 이동경로를 시력이 약한 시각장애인들은 인지할 수가 없다. 아동이나 발달장애인은 횡단보도에서 횡단의 시점을 순간적으로 눈치껏 판단해 건너기가 매우 어렵다.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지체장애인이나 어르신, 유아차를 동반한 성인은 차량통행이 덜한 막간의 시간에 재빨리 횡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더군다나 두 개의 차선을 넘어야 횡단이 성공인데, 신호등에 의해 두 개 차선의 차량이 일괄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한 차선을 건넌 후 중간지점에서 멈추었다가 다시금 반대 차선을 건너야 하는 경우도 있는 바 중간지점의 대기공간이 매우 협소해 성인은 물론 특히 휠체어, 유아차 등이 정차해 있기에 매우 위험하다.
교통체계는 차량과 보행자 모두 안전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 원칙이다. 효율이 생명을 압도할 수 없고 우선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회전교차로는 교통 흐름의 효율성에 긍정적 측면도 있겠지만 보행자, 특히 보행약자에게는 매우 위험한 ‘저승으로의 횡단길’인 것이다.
요새 생활상의 디자인에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모두의 안전과 편의를 고려한 디자인 정신인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UD)이 큰 각광을 받고 있는 바 회전교차로는 ‘누구만을 위한(차량)’ 그리고 ‘무엇만을 위한(차량중심 효율성)’ 매우 편향되고 제한적인 디자인 적용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이라도 차량뿐 아니라 보행자도, 차량 흐름뿐 아니라 보행자의 안전도 함께 고려해 모두를 위한 교통체계로의 재구상이 필요한 때이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러한 책무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회전교차로의 신규 설치에 신중한 고려가 절실히 필요하고, 기존 회전교차로의 신호교차로로의 재전환을 세밀히 고민해 봐야할 것이다.
당장 신호교차로의 재전환이 어렵다면, 보행안전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회전교차로 근접 횡단보도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지하도나 육교의 설치, 양차선 중간(중앙차선)에 안전한 보행자 전용 정지공간의 마련(야간에도 안전 확보 가능한 조치 포함), 횡단보도상 보행자만을 위한 신호등 설치 등의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차량과 사람, 효율과 안전 등이 조화롭게 부회되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의 교통체계가 강원지역에 착근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