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월요칼럼]선생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김미월 소설가

스승의 날이다. 해마다 어린이날이 돌아온다고 딱히 내가 어린이였던 시절이 떠오르는 것은 아닌데 어째서인지 스승의 날이 되면 어김없이 내가 십대 학생이었을 때 만난 선생님들이 떠오른다. 특히 한 사람, 내가 성인이 된 후 유일하게 찾아뵈려고 여러 차례 근황을 수소문한 바 있는 어느 선생님 한 분이.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다. 엄마가 큰 병을 얻었다. 우리 가족이 살던 강원도에서는 당시 그 병을 고칠 수 없어 엄마는 서울의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수술을 받기로 했다.

상경을 앞두고 엄마는 나에게 밥 짓는 법을 가르쳤다. 나는 배우는 척하면서 속으로 딴생각을 했다. 엄마는 부모 없이도 갖은 역경을 이겨내고 훌륭하게 성장한 위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듣는 척하면서 또 딴생각을 했다. 엄마가 없어서 내가 밥을 하는 상황을, 엄마 없이 나 혼자 알아서 성장하는 상황을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엄마가 입원한 후에도 나는 평소대로 학교에 갔다. 하지만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친한 친구들이 웃고 떠드는 것을 보아도 아무 감흥이 없었다. 좋아하던 분식점 떡볶이를 먹어도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수학여행이 다가왔다. 나는 불참하겠노라 담임선생님에게 말씀드렸다. 왜? 즐거울 것 같지가 않아서요. 왜? 엄마가 편찮으셔서요.

마지못해 대답은 했지만 어차피 선생님은 내 상황에 관심 없으리라 생각했다. 매사에 고지식하고 학생들에게도 늘 무심하고 엄격하기만 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그리고 엄마의 수술이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다는 아빠의 통화를 엿들은 날, 나는 결심했다. 혹 수술이 잘못된다면 탈선해버리겠다고. 학교도 그만두고 공부도 포기하고 일반적인 중학생이 해야 할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고. 그냥 사정없이 망가져버리겠다고 말이다. 그것을 미리 연습이라도 하듯 나는 조금씩 삐딱해져갔다. 숙제도 하지 않고 시험도 대충 치르고 자율학습에도 멋대로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호되게 야단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대뜸 수학여행을 가자고 했다.

“즐거울 것 같지 않다고? 내가 즐겁게 해줄게.”

어안이 벙벙했다. 평소 재미없는 말만 골라 하는 선생님이 농담을 할 리는 없었다.

“너 그거 아니? 간절히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거.”

“…….”

“그냥 하는 말 같지? 아니야.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 그래. 진심으로 간절히 소망하면, 그리고 그 소망에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으로도 최선을 다하면 그건 꼭 이루어져. 네 어머니 수술 잘 될 거야. 네가 간절히 바라니까. 그리고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네가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해 생활할 거니까. 그러니까 가자, 수학여행.”

선생님 말씀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 믿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당신 앞에 무기력한 얼굴로 서 있는 어린 제자에게 어떻게든 활력을 되찾아주겠다는 각오가 깊고 서늘하게 배어 있던 선생님의 눈빛을. 간절히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그 식상한 대사가 어떻게 나를 건드리고 마침내 나를 울렸는지도.

전경숙 선생님,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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