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이별에도 기술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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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설영 원주주재 차장

원주가 시끄럽다. 장이 바뀌면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새 판을 짠다. 전임의 흔적을 지우는 것 역시 으레 관행처럼 여겨지는 만큼 어느 정도 소란은 당연할 수도 있다. 원주시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비치는 모양새다. 기실 이런 일이 원주만 그런 것도, 이전에는 없었던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일부 변화는 완전히 뒤집어엎는 수준이다.

특히 문화예술 관련 민간 주도형 위·수탁 사업은 줄줄이 철퇴를 맞았다. 보조금 부정수급을 확인한 원주시가 위·수탁 협약을 해지하면서 생명협동교육관은 연말까지 문을 닫았고, 민간 보조사업 형태로 운영되던 법정 문화도시 사업의 주체도 중도에 변경됐다. 한지전시체험관 계획 역시 백지화됐고 한지테마파크는 위탁 운영 기간이 대폭 단축됐다. 보존으로 결정됐던 원주아카데극장은 철거로 정책 방향이 돌아서면서 파장이 만만치 않다.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문화자산이라는 주장과 붕괴 우려가 큰 흉물스러운 건물이라는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쉴 새 없이 뻥뻥 터지는 터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불안함과 혼란으로 결국 시민에게 돌아올 행정·재정적 부담이 최소화되기만을 바랄 뿐. 하지만 반발 집회와 기자회견이 이어진다거나 원주시를 상대로 법적대응을 준비가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심지어 아카데미극장은 양당 갈등으로까지 확대돼 회의 파행 사태가 벌어졌던 모양새를 보면 조용한 마무리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후 후유증이 걱정된다.

기분 좋은 이별이란 없다. 이별이라는 행위 자체가 상처를 수반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좋은 이별을 하려는 노력은 언제나 있어야 한다. 비단 연인 관계 뿐 아니라 모든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현재 원주시의 끝맺는 방식이 아쉽다. 마치 지금까지 쌓여왔던 것들을 깡그리 쓸어버리겠다는 듯한 단호함을 고수하는 행정이 우려스럽다.

어느 쪽을 편드는 게 아니다. 그럴 문제도 아니고. 잘못됐다면 당연히 뜯어고쳐야 한다. 그리고 원주시가 현재 그리는 큰 그림과 맞지 않는다면 손을 댈 수도 있다. 그렇지만 '틀림'과 다르게 '다름'은 주관이 들어간다. 어느 길은 맞고 다른 길은 틀리다는 게 아니라면, 단지 이 길보다 더 나은 길이 있다고 판단해 결정한 것이라면 그렇게 매몰찰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모두 원주시민인데. 다 함께 원주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도 부족한 상황에서 굳이 적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려운 매듭일수록 하나씩 천천히 풀어야 한다. 중국 북제의 왕 고환은 여러 아들의 능력을 시험하고자 엉킨 실뭉치를 하나씩 주면서 풀어보게 했다. 모두 한 가닥씩 풀려고 애쓰는 와중에 왕자 양은 "어지러운 것은 단칼에 베어버려야 한다"며 칼로 실뭉치를 싹둑 잘라버렸다. 어지럽게 얽힌 일을 명쾌하게 처리한다는 '쾌도난마'의 리더십, 물론 필요하다. 그런데 쾌도난마는 통치자의 폭정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정권이 바꾸면 정책도 달라지지만 사업에 사람이 얽힌 지금의 상황에서는 주저 않는 결단력에 배려심을 더하는, 세련된 행정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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