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총선
총선
총선
총선

사회일반

[주야절경]새까맣게 덮쳐 온 화마도 불심까지 태울 순 없었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천년 사찰 양양 낙산사
의상대사 창건 이후 1,350여년 동안 자리 지켜
2005년 대형산불 이외도 수차례 화재 아픔겪어
국민들 종교 초월 보시 어느새 울창한 숲 이뤄

우연히 낙산사 누대를 노닐다가

높고 오래된 의상대에서 객의 시름을 씻는구나

의상대사 가신 지 천년이건만 돌아오시지 않아

다만 산 아래로 흘러가는 푸른 물결만 바라보네

18세기 체조스님이 남긴 시다. 따가운 햇살을 정면으로 맞으며 의상대에 올랐다.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기록에 남아 있는 것처럼 세상 번뇌를 모두 잊게 했다. 5월답지 않게 낮 기온이 35도였던 것은 이 순간을 위해서였나 싶었다.

◇사진=신세희기자

낙산사는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당나라에서 화엄교학을 공부한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의상은 관세음보살을 만나기 위해 14일 동안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렸다. 끝내 만나지 못하자 바다에 몸을 던졌더니 바닷속 동해용이 그를 건져 돌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곤 여의주와 수정염주를 건네주며 “내 몸은 직접 볼 수 없다. 다만 굴 위의 두 대나무가 솟아난 곳이 나의 이마 위다. 거기에 불전을 짓고 상을 봉안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그곳이 바로 원통보전 터라고 한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후 1,350여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 온 낙산사는 2005년 대형 산불 이외에도 수차례의 화마가 지나갔다. 786년에 일어난 첫 번째 화재는 사찰 대부분을 태웠다. 858년(신라 헌안왕 2년) 범일 대사가 중창했으나 1231년(고려 고종 18년) 몽고군의 침입으로 소실됐다. 조선 건국 후 1467년(세조 13년) 왕명으로 중창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해 또 화재를 겪었다. 조선 인조 시대에 재차 중건, 1777년(정조 1년) 화재로 원통보전을 제외하고 모두 탔다. 이듬해 다시 지었으나 1950년 6·25전쟁으로 사찰 내 전체 당우가 불에 탔다.

2005년 4월5일 대형 산불로 피해를 겪고 2년여 동안의 발굴조사 후에 복원이 시작됐다. 조사를 통해 통일신라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낙산사 유구를 발견했다. 복원위원회는 낙산사가 가장 크고 장엄했던 조선 세조 때의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그 모습이 잘 반영된 단원 김홍도의 작품 ‘낙산사도’를 참고해 복원을 시작했다. 다시는 화마가 찾아오지 못하도록 주요 전각에는 수막시설을 설치하고 곳곳에 방화사와 방화수, 소화기를 갖췄다. 전각 인근엔 불에 강한 나무를 심었으며 바람길을 열어 놔 보다 화재를 대비했다.

원통보전에서 해 지는 것을 기다렸다. 나뭇잎 스치는 바람 소리가 경내를 감돌았다. 산불 이후에 심어진 어린 나무들이 그동안 무럭무럭 자라 울창한 숲이 돼 가고 있었다. 당시 산불로 낙산사가 전소된 것을 안타까워한 국민들이 종교를 초월해 보내 준 마음의 결과다.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한 국민과 불자들의 성원에 힘입은 천년고찰 낙산사는 앞으로 천년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