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터뷰]시골서 사랑의 인술… '낭만닥터' 지경천 원장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지경천 정선의료재단 군립병원장
"강원청소년올림픽 전담의사 필요"

◇지경천 정선의료재단 군립병원장은 주민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공공의료서비스 제공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농촌이자 폐광지역에서 고향 주민들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위해 공공의료에 몸을 던진 의사가 있어 화제다.

국내 위암 수술의 대가로 손꼽히는 지경천(65) (재)정선의료재단 군립병원장이다.

작지만 강한 병원을 지향하는 정선의료재단 군립병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기초 지자체가 설립·운영하는 군립병원이다. 정선군은 정선군립병원이 적자에 허덕이자 2019년 말 (재)정선의료재단을 설립하고, 2020년 정선의료재단 군립병원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여기에 지경천 원장이 제2대 군립병원장으로 지난 3월 취임했다.

정선 출신인 지 원장이 취임하면서 정선군립병원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적극적인 병원 체질 개선과 환자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직원 교육 등을 통해 이제는 믿고 찾는 병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에 지경천 정선군립병원장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먼저 그가 정선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위암 수술의 대가이자 중앙대 외래 교수였던 만큼 서울에도 좋은 자리도 많았을 것 같은데 굳이 산골 병원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넉넉치 않은 형편에도 공부를 하게 해 주신 어머님의 뜻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셨거든요. 의사가 되면 다시 정선으로 돌아와, 의술을 베풀면서 살라고…. 하지만 은사님들의 권유로 학교에 남아 교수로 재직했어요. 항상 마음 한편으로는 고향 의료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일에 쫓기다 보니 30여 년 만에 어머니 뜻을 받들게 됐네요.”

정선행을 정하자 가족들과 지인들은 처음에 어리둥절 했지만 나중에는 지 원장의 뜻을 알고 많은 응원을 했다고 한다. 그가 근무하던 병원 외과 전공의와 교수들은 ‘드라마에서 보던 돌담병원으로 가시는 거에요?’, ‘드디어 낭만닥터가 되시는 겁니까?’라고 물으며 반색을 했다.

실제 TV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묘사된 돌담병원은 정선군 사북읍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드라마 속 소재가 되는 강원랜드 카지노와 사북이라는 지명 등이 그대로 사용됐기에 사북읍 정선군립병원이 돌담병원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아 내기도 했다.

“드라마 속 돌담병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징성이 있으니 한번씩 와보라고 권유했더니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제 마음 속으로는 돌담병원처럼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아픈 이를 외면하지 않고, 지역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는 병원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다짐을 한 계기가 됐습니다.”

정선에서 그의 하루는 테니스로 시작한다. 원장에 부임하면서 곧바로 고한사북테니스회에 가입했고, 지역 주민들과 테니스를 즐기는 맛(?)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병원 앞에 위치한 사택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병원에 도착해요. 서울에서는 출근에 1시간이나 걸렸는데 정말 좋은 근무환경 아닙니까? 좋은 근무 환경에서 보람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행복합니다. 테니스를 즐기며 쌓인 스트레스도 말끔히 해소하고, 주민들도 함께 어울리며 소통하니 다들 좋아하세요.”

주민과 함께하면서 그는 지역의 공공의료서비스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 제대로 된 병원과 의사를 만날 수 없으니 원주로, 서울로 병원을 찾아 헤맬 수 밖에 없는 주민들에게 최소한 1차 진료 만큼은 충실히 제공해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게 됐다.

“지역 여건과 주변 의료 환경을 고려했을 때 군립병원은 1차 진료에 충실해야 합니다. 정선군민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 나아가 강원랜드 직원들이 1차 진료를 받으러 서울까지 가는 불편을 최소화 시킬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종합건강검진을 할 수 있도록 건강검진센터를 만들 계획입니다. 이미 병원에 갖춰진 CT와 초음파 장비만으로도 충분히 큰 병을 검진할 수 있어요.”

작지만 강한 병원을 만들겠다는 지 원장의 포부는 지역의 어려운 의료 여건 개선부터 시작했다. 지 원장은 중앙대 의료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지역 주민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확대했다. 현재 군립병원에서 진료중인 외과, 내과, 정형외과, 소아청소년과 등 4개 과 이외에 지역에 없는 진료과목에 대해서는 중앙대 의료원의 파견 진료를 시작한 것이다.

“중앙대 의료원과의 협력병원 체결을 통해 파견 진료가 가능했어요. 일단 피부과, 비뇨기과, 신경과 등 3개 과를 시작해서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면 상호 ‘윈윈’의 가치를 공유해야죠. 군립병원은 많은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어서 좋고, 중앙대 의료원은 대학병원의 위상이 고양되는 성과가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진료과목 확대로도 이어지지 않을까요?”

중앙대 의료원 파견 진료는 지역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정선에선 찾아보기 힘든 피부과와 비뇨기과, 신경과 의사가, 그것도 대학병원 의사가 정선까지 내려와 한 달에 한번 진료를 봐준다. 지난 8월 첫 파견 진료였기에 아직 월 1회 진료 날짜도 고정적이지 않지만, 주민들은 벌써부터 병원에 진료를 문의하고 그날만 기다린다. 파견의사들 역시 공기 좋고 산세 좋은 정선 사북에서의 진료 날짜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새로운 환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도시 생활에 지친 심신에 잠시나마 휴식을 주는 시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란다.

“파견 진료에 대한 환자분들의 관심과 호응은 굉장해요. 공공병원에서 진료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급병원 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신속히 전원시켜 ‘원스톱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있어요.”

지 원장의 지역 사랑과 병원에 대한 애착은 직원 친절 마인드까지 확대됐다. 취임 후 제일 먼저 직원들에게 책을 두 권을 나눠주며 읽기를 독려했다. 한 권은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고, 또 다른 한 권은 ‘1500일간의 스캔들’이라는 자기개발서다. 전 직원들이 돌려가며 읽었고,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실천했다.

“환자들은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오시지만, 직원들이 불친절하면 결국 다른 병원을 이용하거나 아예 병원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직원들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서 새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증축 병원 완공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은 만큼 ‘병원만 새 병원이 아니라, 직원도 그에 걸맞는 좋은 병원’이라는 인식을 환자들에게 심어주겠습니다.”

지 원장에게 최근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2024년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이 정선에서 열리며 정선군립병원이 공식병원으로 지정됐다. 하이원스키장에서 알파인스키·모굴 2개 종목에 12개의 메달을 놓고 200명의 선수들이 기량을 겨룬다. 당연히 부상 선수가 나올 수 있고, 정형외과 의사가 필요하지만 정선군립병원에는 정형외과 의사는 단 1명 뿐이다.

“국가적인 행사에 저희 군립병원이 공식 병원이 된 것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대회 기간 동안 1명의 정형외과 의사가 선수단과 지역 주민을 모두 진료하기에는 한계가 있죠. 전담 의사를 1명을 상주시켜야 합니다. 올림픽조직위원회나 강원랜드가 재정적인 지원을 통해 정형외과 의사 1명을 전담토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전담의사 확충은 중앙대병원이나 또 다른 협력병원의 도움을 받으면 해결될 것 같고요.”

지경천 정선군립병원장은 인터뷰 막바지에 이르러 주민들에게 약속을 했다.

“저희 정선군립병원은 설립 취지에 맞게 질 높은 의료로 환자 진료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작지만 강한 병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작은 것부터 하나씩 변화해 내실을 다지고, 지역 주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양질의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군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지경천 (재)정선의료재단 군립병원장은

△정선읍 출생 △정선중 졸업 △서울 중앙대부속고 졸업 △중앙대 의과대학 졸업 △중앙대 의과대학원 의학박사 △전 중앙대 용산병원 외과과장 △전 중앙대병원 외과과장 △전 중앙대 의과대학 외과교수

◇지경천 정선의료재단 군립병원장 행정 업무 모습
◇지경천 정선의료재단 군립병원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