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문해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아이들이 과거에 비해 글을 잘 안 읽고, 못 읽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수업 시간에 단어 뜻풀이하느라 정작 중요한 내용을 잘 가르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취약한 문해력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읽기 시험에서는 우리 학생들의 하위권 비율이 2000년 대비 세 배 가까이 늘어나(2000년 5.7% → 2018년 15.1%)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시험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문항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유독 낮은 점수를 거뒀다고 한다. 비판적 사고력도 취약하다는 증거다.
우리나라 문맹률이 매우 낮은데 웬 문해력 타령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문해력에 대한 오해다. 옥스퍼드 사전에서는 문해력(literacy)을 ‘읽고 쓰는 능력’이자 ‘특정 영역의 전문성 또는 지식’으로 정의한다. 단순히 글자를 판독하는 능력을 넘어, 글 속에서 정보를 종합하고 전문성을 키워 가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문해력의 차이는 사회생활에서 승진이나 보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습득하거나 정보의 가치를 분석하는 고차원적 사고활동은 결국 문해력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정치 언어에 휘둘리지 않고 분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문해력이다. 따라서 ‘문해력 격차’는 학력과 소득 격차를 야기하는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현상이다.
문해력 격차가 확대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사회경제적 요인을 살펴볼 수 있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많이 분포된 학교의 가장 큰 고민이 문해력이다. 소득 양극화, 다문화 가정 증가로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자녀에게 양질의 ‘문해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것이 일차적 원인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학령기 문해 교육이 과거보다 취약해졌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학생들은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활자보다 영상에 익숙한 세대다. 요즘은 특히 몇 초짜리 짧은 영상이 유행하면서 집중력에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읽고 쓰고 발표하는 교육이 더 강화돼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객관식 문제풀이와 정답 찾기를 위한 기계적 반복 학습만 계속된다면 문해력과 사고력 발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해력의 중요성에 동의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문해력 향상을 중요한 목표로 두고 공교육 활동 전반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비단 국어 교과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취학 전 가정의 문해 환경부터 유의 깊게 살펴봐야 하고, 학교에서는 모든 교과에 걸쳐 ‘즐겁게’ 읽고 쓰고 토론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즐겨 읽고 제대로 읽는 학생치고 학업 성취가 낮은 학생은 드물다는 점에서, 문해력 향상은 가장 효과적인 학력 향상 대책이기도 하다. 모든 아이의 문해력을 길러주는 것은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삶의 힘을 키우고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공교육의 근본적 책무다. 인력, 예산, 연구 등 과감한 투자를 망설일 이유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