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선거는 현직이 유리하다. 법 테두리 안에서 유권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창구가 무궁무진해서다. ‘현역 프리미엄’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내년 4월 치러지는 총선도 현역 국회의원이 다른 후보들보다 우세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국민의힘 소속의 경우 대부분 ‘친윤’(친윤석열 대통령)그룹에 속해 있어 당내 경쟁자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춘천-철원-화천-양구을’의 한기호 의원만은 예외다. 그는 내년 총선에서 당의 공천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소문에 휩싸여 있다.
이 같은 설은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나왔다. 한 의원이 윤 대통령과 친윤그룹에서 비토하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의 측근이었다는 것이 원인으로 꼽혔다. 이준석 당대표 시절 사무총장을 맡았던 것이 그렇게 각인됐다. 여기에 1952년생인 그의 나이도 부정적인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됐다.
일단 나이는 크게 문제될 것 같지는 않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강원특별자치도의 60대 이상 유권자는 33%가 넘었다. 또 당내에서 일률적으로 나이 기준을 잡기도 쉽지 않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한 의원보다 빠른 1949년생이다.
일각에서는 한 의원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못할 ‘다른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것은 없다. 낭설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결국 한 의원의 가장 큰 문제는 비주류인 ‘이준석계’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과연 이것이 공천에서 배제될 만큼 중대한 문제냐 하는 것은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치적으로 그 가능성을 배제시킬 수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계파 갈등에 따른 현역 국회의원 공천 배제가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 제16대 총선과 2008년 제18대 총선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은 ‘물갈이’라는 명목으로 현역 중진의원들을 대거 탈락시켰다. 가깝게는 3년 전 제21대 총선때 미래통합당 소속의 권성동 의원이 친박-비박 계파 다툼의 희생양이 돼 공천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에 따른 선거 결과다. 16대와 18대 때에는 공천 탈락자들이 새로운 당을 만드는 바람에 한나라당은 고전했고, 권 의원을 컷오프시켰던 미래통합당은 총선에서 참패했다. 결과적으로 공천 과정이 혼란스러웠던 당은 항상 어렵게 선거를 치러야 했다.
내년 총선에서 ‘춘천-철원-화천-양구을’에서도 이처럼 복잡한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생겼다. 자신의 거취에 대한 말들이 무성함을 알고 있던 한기호 의원이 “납득하지 못할 이유로 공천에서 배제된다면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배수진을 쳤기 때문이다. 본인이 ‘이준석계’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데 이것을 이유로 출마까지 막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해당 지역구에서 3선을 지내면서 인지도와 지지세를 갖춘 그가 실제 무소속으로 나선다면 국민의힘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더욱이 군 장성 출신의 유일한 지역구 의원이면서 국회 국방위원장까지 지낸, 당내 몇 안 되는 ‘안보통’이라는 점에서 무작정 내치기에도 당의 부담감이 적지 않다. 그야말로 딜레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원칙을 지키라는 말이 있다. 국민의힘이 지금 되새겨야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공천의 원칙은 공정성이다. 과정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면 경쟁력 있는 후보가 본선에 오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법적·도덕적으로 문제없고 어느 정도의 소양을 갖춘 후보들이 나왔다면 모두가 참여하는 경선을 하는 것이 옳다.
춘천-철원-화천-양구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거론되는 후보 모두가 각각의 장점이 뚜렷하고 경력과 경험은 물론 스토리도 다양하기 때문에 경선 그 자체만으로 유권자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어서다. 그렇게 탄생한 후보는 한층 높아진 위상과 경쟁력을 갖고 본선에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당내 흐름에 민감한 당원들을 믿는다면 흥행은 물론 예상치 못했던 결과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기호 의원은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역과 여의도에서 관심의 대상이 돼 있다. 이제 공은 당으로 넘어갔다. 국민의힘이 과연 모두를 승리자로 만들 수 있는 ‘세련된 정치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앞으로 진행될 당의 공천 과정에 정치권과 지역 유권자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