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값이 금값이더라” 지난 추석 어김없이 농산물 가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월급 빼고 오르지 않은 게 없다는 데 유독 농산물 가격 상승에는 따가운 시선이 꽂힌다.
사과 한 개 가격이 만원을 웃도는 ‘금사과’ 대란에 농가의 살림살이는 나아졌을까?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웃지 못했다. 올봄 이례적 고온 현상과 뒤이어 찾아온 냉해에 팔 사과가 남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과나무는 봄철 꽃을 피운 후 꽃이 핀 자리마다 열매가 달리는데, 올해 강원지역은 3월부터 이어진 이상 고온현상에 평년보다 일찍 사과꽃이 피었다. 꽃이 핀 상태에서 꽃샘추위가 찾아오면서 사과꽃이 얼어서 떨어지는 냉해 피해가 발생했다.
강원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도내 과수농가에서 발생한 냉해 피해는 408.3㏊로 축구장 572개 면적에 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냉해가 지나간 뒤 6월에는 도 곳곳에 우박이 쏟아지면서 422.9㏊(축구장 592개 면적)의 농경지가 쑥대밭이 됐다.
이상기후가 휩쓸고 간 과수원에 남은 것은 금사과가 아닌 멍투성이 사과와 농민들의 한숨이었다. “농사꾼은 하늘을 탓하면 안 된다는데 올해는 유독 하늘이 야속하다”는 냉해와 우박피해를 연달아 겪은 농민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사과값이 금값이 된 것은 사과 물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과 가격이 연일 입방아에 오르는 동안 애지중지 농산물을 돌봐온 농민들의 노고는 지워졌다.
김장철이 다가오자 사과에 붙었던 ‘금’자가 배추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배추 한 포기의 평균 소매가격은 6,826원으로 평년(6,442원)보다 6% 상승했다. 가을배추 주산지인 홍천‧횡성‧영월 등에서 배추 무름병 등 병충해 피해가 번지며 빚어진 사태다.
이상 기상 현상이 잦아지면서 농산물 가격 상승폭은 날로 커질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2090년에는 태백에서 고랭지 배추 재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제 농산물 가격 상승에만 고정된 시선을 거두고 시야를 넓혀 그 배경까지 살필 때다.
밥상물가와 직결된 농산물의 적절한 수급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비축물량 방출, 수입 농산물 공급 확대 등 농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단기 물가 관리 대책으로는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 오르는 건 나라 전체가 관심을 가지는데 비료값 오르는 건 아무도 몰라준다”고 하소연했다. 인건비와 원자재 등 생산비 상승으로 영세 농가는 농사를 지을수록 적자가 나는 상황이다.
농산물을 장바구니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하기 전에 농산물 가격 급등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농가 소득 안전망 구축 등 농가의 경영안정 대책을 마련해 안정적인 농산물 생산 구조를 확보해야 한다.
해마다 농산물 앞에 지독하게 따라붙는 ‘금’자를 또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쑥대밭이 된 농장에서 복구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농민들의 한숨을 떠올려 보자.
하늘은 야속해도 정부는 야속하면 안 된다. 국민 먹거리의 근간인 농촌의 고통을 더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