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2023 태봉학술회의] “태봉의 가치 적지 않아… 태봉역사문화권 설정 도내 지자체 힘 모아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주제발표1-"동주산성·성산성은 철원·김화지역 역사적 뿌리"
주제발표2-"개신교는 철원·김화지역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
주제발표3-"철도의 존재, 철원·김화 발전 및 쇠퇴에 영향"
주제발표4-"영상자료를 통한 철원의 근현대사 연구 필요"
주제발표5-"철원의 근현대 역사 담은 구호주택 보존 모색"

◇2023 태봉학술회의가 지난 20일 오전 11시 군청 대회의실에서 '근현대 철원의 형성과정과 사회변화'를 주제로 개최됐다.

2023 태봉학술회의에서는 근현대 철원의 형성과정과 사회변화를 주제로 태봉학회 회원 및 학자들의 다양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학술회의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전후해 종교와 문화 등을 통한 철원지역의 형성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지역의 사회변화를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데 의의를 둘 수 있다. 2023 태봉학술회의는 강원일보사·철원군이 주최하고 태봉학회가 주관해 진행됐다.

/태봉역사문화권 설정을 위한 제안/

◇조인성 태봉학회 회장(경희대 교수)

△조인성 태봉학회 회장(경희대 교수)=후삼국 시기 가장 강성했던 나라는 태봉이다. 고려라는 국호는 궁예에 의해 탄생했고 고려 초 정치제도는 태봉의 제도를 이어받았다. 이 시기 태봉이 가진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궁예는 신라 왕정 출신으로 영월 세달사로 출가했고 북원, 즉 현재 원주의 양길에서 장수로 이름을 떨친다. 평창, 강릉으로 들어가 자립한 궁예는 양구, 화천을 거쳐 철원으로 들어온다. 궁예는 도읍을 옮길 목적으로 철원을 살폈으며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포함, 정치적인 뜻을 강원도에서 품었다. 태봉역사문화권 설정이 철원군 뿐 아니라 여러 지자체와 힘을 모아 추진해야 할 이유다. 철원군과 군민, 지역 정치권의 지지와 관심이 절실하다.

/주제발표/

주제발표1-'전통시대 철원과 김화고을의 도시 구성과 풍경'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옛 철원의 읍치는 왜 철원읍 관전리에 위치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강원도의 감영이 있던 원주와 강릉의 읍치를 보면 풍수의 명당 형국과는 관계가 없다. 삼국시대를 지나며 고을의 읍치는 지배자가 거주하는 산성 또는 절벽지형의 요새성과 그 아래 평야지역의 일반 주거지로 구성됐다. 산성은 오르내리는데 불편함이 적고 고을의 대부분이 한 눈에 조망돼야 했다. 중소 규모의 단기전에 높은 방어력을 가진 산성이 축조되기도 했다. 이같은 요인을 갖춘 곳이 바로 동주산성과 관전리, 성산성과 읍내리다. 철원과 김화의 역사적 정체성의 출발점은 동주산성과 성산성이 돼야 한다.

주제발표2- '구한말 개신교 전파와 철원 김화지역의 변화'

◇홍승표 한국기독교 역사학회 연구이사

△홍승표 한국기독교 역사학회 연구이사=영동지역은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인해 한국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복음 전파가 가장 늦었다. 철원·김화는 이러한 영동지역 선교의 베이스캠프였다. 철원·김화에 강원도 최초의 개신교회가 설립된 것도, 도내 첫 3.1 독립만세운동이 철원에서 일어난 것도 모두 지정학적·역사적 내력과 관련이 있다. 철원·김화 주민들은 개신교를 수용했고 강원도의 첫 개신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됐다. 개신교를 따라 근대 교육도 실시돼 시민들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했고 일부 개신교인은 의병운동에 동참했다. 3.1운동과 철원애국단, 대한독립청년단 등 독립운동과 다양한 사회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했다.

주제발표3- '철원·김화지역의 교통로 변화와 읍치의 이동'

◇김종혁 역사지도공작소장

△김종혁 역사지도공작소장=철원과 김화는 경기지역과 지리적·역사적으로 가까울 수 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철원은 강원 영서북부의 중심으로 부상했는데 이는 경원선의 역할이 무엇보다 컸다. 1924년에는 철도에 기반해 다시 한번 지역적 부상을 시작하는데 이는 금강산 철도의 부설 덕분이다. 사람들이 몰리며 신흥 마을도 생겨났다. 하지만 김화지역은 1940년대 금강산선이 폐선되며 생기를 잃었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철도의 부침, 지역의 쇠퇴 등의 패턴을 보이는 곳인 만큼 향후 통일시대 철원의 발전을 위해서는 교통, 특히 철도의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주제발표4-'A.S.C 영상자료를 통해 본 한국전쟁과 철원'

노성호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

△노성호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가 소장 중인 영상 자료는 한국전쟁 기간 미 육군통신대가 보관하던 필름자료 중 일부를 복사해 온 것이다. 해방 직후 이승만, 김구, 백선엽 등 역사적 위인을 비롯 한국의 사회상, 좌·우 대립 등 당시의 생생한 모습이 담겼다. 특히 전쟁 한가운데 있던 철원의 모습도 다양하다. 폭격기의 철원지역 공습이나 중서부 전선 전투 모습, 철원에서 열린 위문공연 등의 영상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철원의 산하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앞으로 영상자료를 통한 철원의 근현대사 연구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주제발표5-'한국전쟁 전후 철원군 중심지 변동과 구호주택 건설'

◇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

△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전쟁 이후 새로운 철원군의 도심지 형성 및 구호주택 건설과정은 현재 철원의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당시 고향집이 파괴된 대다수의 철원·동송 주민들은 군부대에서 제공한 천막에 머물러야 했다. 이에 군대가 지역 곳곳에 8평짜리 공동주택을 861세대 지어서 무상으로 나눠준 것이 구호주택이다. 고주택, 게주택, 궤주택 등으로 불렸던 구호주택은 15곳, 583동, 861세대의 현황이 밝혀졌다. 구호주택을 지키던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곳에 담긴 이야기도 사라지고 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구호주택에 대한 연구가 심도있게 진행돼야 한다.

/토론/

◇최종석 동덕여대 국사학과 교수

△최종석 동덕여대 국사학과 교수=철원과 김화 고을의 읍치를 통시적으로 파악한 연구는 일부 각론에 대한 생각이 다를 뿐 총론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 철원, 김화 읍치가 고대 어느 시점까지의 읍치 공간과는 상이하고, 조선시대 읍치의 공간적 특징에서 어느 유형에 해당하는지 분명히 한 발표였다. 옛 고을의 읍치의 변화상을 주목하고 서사와 의미 부여가 이뤄져야 읍치의 형성과정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김영명 춘천 상걸리교회 담임목사

△김영명 춘천 상걸리교회 담임목사=철원·김화 주민들은 기독교 수용 과정을 통해 윤리적 삶을 회복하고 겸양의 태도로 지역사회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것이 뿌리가 돼 일제강점기 3.1운동과 철원애국단, 대한독립청년단 등의 독립운동을 비롯한 각종 민족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했다. 또 지경터교회가 최초의 강원지역 교회임이 밝혀진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양정현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양정현 순천대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연구교수=철원·김화의 교통로 변화와 읍치의 이동 연구는 지역의 행정구역과 도로망, 인구 등 역사지리적 구성요소를 제시하고 세밀하게 복원한 결과다. 또 교통과 시장, 인구는 서로 삼각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역사지리적 연구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철도로 인한 철원·김화지역의 발전과 쇠퇴를 면밀하게 분석한 만큼, 이 지역의 미래 발전 방향을 모색할 계기가 됐다.

◇김병륜 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

△김병륜 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미군의 한국전쟁 영상자료에 대한 포괄적인 정리와 함께 철원과 관련된 영상을 분석한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다. 다만 영상기록이 아직 역사 연구에 충분하게 활용되지 못한다. 연구자들에게 낯설다는 이유와 함께 영상에 대한 접근성이 문헌사료에 비해 떨어진다는 측면도 있다. 근현대 영상자료에 대한 관심과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

황병훈 춘천MBC 편성제작국 PD

△황병훈 춘천MBC 편성제작국 PD=구호주택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철원이 한반도의 허리 역할을 한 중요한 지역임을 알게 됐다. 서울~원산을 잇는 경원선, 금강산전철 등 교통의 중심지였다.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철원에 들어선 구호주택은 그래서 더 의미가 크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철원에 머문 주민들의 이야기는 한국 근대사의 얼굴이다. 구호주택 단지 중 상징성이 큰 곳은 보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 & 피플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