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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엄지손가락 법칙’

가정폭력의 역사가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보여주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사례로 ‘엄지손가락의 법칙(Rule of thumb)’이란 영어 표현이 있다. 이는 ‘눈대중’이라는 의미를 갖는 숙어다. 남편은 아내를 때려도 무방하나 아내를 때릴 때 회초리 굵기가 자신의 엄지손가락보다 굵어서는 안 된다는 영국의 관습법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1989년 발표된 ‘결혼 증명서=구타 증명서’라는 제목의 논문도 특별히 아내 구타의 심각성을 폭로하고 관련법을 제정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문은 부부 사이에 발생하는 폭력은 가족의 은밀한 사생활로 간주돼 국가의 개입이 불가하다는 입장이 고수되고 있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동시에 가정폭력의 대부분은 보고조차 되지 않아 추정컨대 약 8분에 1명꼴로 미국 어딘가에서는 남편에 의한 아내 구타가 자행되고 있음을 데이터를 통해 입증한 바 있다. ▼물 건너 일이 아니다. 도내 ‘가정폭력’ 신고가 매년 6,000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 가족 구성원의 폭력으로 위협받고 있는 위험한 가정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2019~2022년)간 강원지역에서 접수된 가정폭력 112 신고 건수는 2만6,591건으로 한 해 평균 6,648건씩 발생했다. 가정폭력은 흔히 부부 싸움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속된 가정폭력 사범 중 존속 폭행으로 붙잡힌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 너무도 흔하게 벌어지는 가정폭력 소식 속에 문득 돌아가신 어른들의 가정을 잘 관리하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어릴 때는 그것이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돌아보니 그것이야말로 서로 배려하며 가족 간에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규율인 동시에 가족에 대한 관심의 기본이 아니었을까. ▼가정이 허물어지면 사회가 허물어진다. 어떤 가족이든 존재만으로도 더없이 소중하다. 어느 가정이든 십자가 하나쯤은 있다. 드러내기 힘든 아픔이 있지만 그것을 보듬고 서로 다독이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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