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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의전(儀典)’

의전(儀典)은 행사를 치르는 예법이다. 의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의전의 서열을 정하는 것이다. 17세기 영국 런던에서 각국 대사관이 스웨덴 대사 부임 환영 행사를 마친 뒤 돌아오던 길이었다. 프랑스 대사관 사절단이 마차 행렬의 선두에 서자 스페인 대사관 사절단이 갑자기 무장 호위병들을 동원해 그들을 마차에서 끄집어 내려 큰 소란이 일었고 격노한 프랑스왕 루이 14세는 스페인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해 버렸다. 행사에서 의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다. ▼중앙정부는 의전비서관을 두고 의전편람에 의거해 의전을 한다. 하지만 기준이 없는 지자체 행사장 곳곳에서는 지금도 서열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지곤 한다. 민선시대가 열리면서 자리싸움이 더 잦아진 게 사실이다. 오지도 않는 내빈을 위해 좌석을 비워 둔다거나 소개 순서를 놓고 승강이하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내빈 소개를 생략하는 일도 많다.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의전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양구에서 의전(내빈석 배정) 문제로 한 단체장이 군청 팀장의 멱살을 잡고 행사장 밖으로 끌고 나가 정강이를 걷어차 물의를 빚고 있다. 더욱이 폭행 사건이 발생한 행사가 양성평등대회 개회식이었다. 평등대회에서 서열 때문에 폭력을 휘둘렀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내빈이라면 얼굴만 내밀 것이 아니라 적어도 평등의 의미나 대회의 취지 정도는 숙지했어야 맞다. 더욱이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단체장이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폭행을 저지르는 것은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행사장의 정치인 의전 문제도 더욱 골치 아파질 것이다. 어디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평소 얼굴도 내비치지 않던 정치인이 눈에 띄게 늘어날 것이다. 그간 행사 의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야 간 기싸움에 행사 주최 측만 난감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의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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