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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신사협정’

국회 본회의장이나 상임위 회의장이 방송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상대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야유나 욕설, 고함을 치는 모습이다. 여야를 가릴 것이 없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이들을 가리켜 “국회에서 소리치는 사람이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총선시민연대는 국회에서 상습적으로 야유나 욕설을 하는 의원을 함량 미달의 저질 의원으로 여기고 공천 부적격자와 집중 낙선대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라지기는커녕 늘고 있는 추세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 여야는 ‘신사협정’을 맺곤 했다. 2001년 여야 3당 총무는 욕설이나 폭언, 야유를 하지 않기로 하는 ‘노 샤우팅(No shouting) 헌장’을 만들어 지키기로 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야유나 욕설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의원들이 강제규정도 아닌 신사협정 하나 깨는 게 무슨 대수였겠나 싶다. 2007년 정당 대표들은 투명한 대선을 치르자며 자금내역 공개, 지역주의·금권 공세 금지 등의 협약을 했지만 며칠 가지 못했다. ▼여야는 10월2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나 교섭단체 대표연설 도중 야유하지 않기로 신사협정을 맺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달 31일 연설이 그 첫 시험대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윤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 땐 헌정 사상 최초로 보이콧했다. 올해는 본회의장에서는 신사협정을 따랐지만 윤 대통령의 국회 입장 동안 침묵의 피켓시위를 벌였다. 회의장 밖이라고 하지만 상호 비방으로 품격을 떨어뜨리지 말자는 그 취지가 바래진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21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막을 내리면서 남은 정기 국회 기간 여야가 맺은 신사협정이 유지될지 관심이다. 여전히 아슬아슬한 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양측의 합의를 어느 한쪽이 지키지 않는다고 느끼면 약속을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쟁보다 협치로 민생에 집중하겠다는 여야의 협정이 이번에는 말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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