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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경] 생명의 보호막 방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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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 동해소방서장

겨울의 문턱 11월은 차가운 바람과 함께 화재 발생률도 높아지는 시기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사계절 중 겨울철 화재 발생률이 28.1%로 가장 높다. 필연적으로 소방서에서는 매해 11월 ‘불조심 강조의 달’을 시작으로 다음 해 2월 말까지 강도 높은 화재 예방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예방 대책을 철저히 계획하고 실행해도 화재는 발생한다. 2017년 12월 제천스포츠센터 화재는 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연소 확대되며 66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그 이듬해 1월에 발생한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도 1층 직원 탈의실에서 처음 시작된 화재로 사망자만 47명, 부상자 112명이 발생한 참혹한 화재였다. 두 참사의 공통점은 화염에 의한 직접적인 사망자는 없고, 화재 시 발생하는 유독가스에 질식하여 숨졌다는 것이다. 특히 세종병원 화재의 경우 소방출동대가 신속하게 도착해 화재 진압을 실시하고 연소 확대를 방지하였으나 소방력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이미 25명이 사망한 상태였으며, 전원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이송 또는 치료 중 사망한 환자도 많았다.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방화문의 부재, 혹은 방화문이 열려 있는 상태로 방치되었다는 점이다.

방화문은 비상구나 계단에서 탈출 방향으로 문을 밀고 신속히 대피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문을 열어 출입하거나 탈출한 후에는 자동으로 닫힌다. 화재 시 발생하는 화염, 연기, 열 등을 차단할 수 있는 특수재질과 형태로 설계돼 있다.

건축법에 따라 일정 면적(대부분의 경우 1,000m²) 이상의 건축물에는 방화문이나 방화셔터를 층마다 또는 정해진 면적마다 설치해 안전하게 구획(방화구획)하여야 한다. 또한 공동주택(아파트)처럼 피난 시 이동하는 계단(피난계단 등)의 출입문 역시 방화문으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건축물 중에 방화문이 열려 있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특히 상가들이 많이 입주해 있는 복합건축물의 경우 손님들이 출입하기 쉽도록 고임목이나, 우리가 흔히 ‘말발굽’이라고 부르는 도어스토퍼를 방화문의 하단에 설치해 문을 열린 상태로 고정해 놓는 사례가 많다.

혹은 방화문을 자동으로 닫히게 해주는 ‘도어클로저’를 불능으로 만들어 항상 개방되도록 하거나, 문 손잡이에 줄을 묶어 벽에 고정해 놓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사례는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6조에 따라 방화구획의 폐쇄·훼손·변경하는 경우에 해당하여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는 불법행위이다. 문 하나 열어놓은 걸로 너무 처벌이 과한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렇게 과중한 처벌 이면에는 방화문은 반드시 닫혀 있는 상태로 관리해 달라고 하는 엄중한 법과 사회의 요구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단지 불편하거나 귀찮아서, 혹은 현실적으로 닫아놓기 힘들다는 변명으로 방치하기에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피해와 상처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절대로 열지 말라고 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쏟아져 나왔던 많은 재앙처럼, 방화문 역시 열어두었을 때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꼭 기억해야 한다. 항상 닫힌 상태로 관리하여 든든한 ‘생명의 보호막’으로 사용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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