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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단상] 영혼의 감기를 앓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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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수 박사
전 강원수필문학회장

먼 산자락을 붉게 물들인 단풍이 어느새 도심까지 내려와 가로수 은행 잎사귀들을 노오랗게 채색하고 있다. 따사로운 가을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형형색색 고운 빛깔의 단풍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하지만, 한편으로 늦가을은 우리들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우수와 멜랑꼴리에 빠져들게 한다. 조락하는 가을날, 알 수 없는 우수에 잠길 때 우리는 영혼의 감기를 앓게 된다. 영혼의 감기몸살은 인생의 중년처럼 지난 일들을 반추하고 잃어버린 시간들을 떠올리는 가을에 찾아온다. ‘가을은 여름이 타다 남은 것’, 그래서 가을날은 영혼의 감기를 앓기에 좋은 계절이다.

영혼의 감기... 이는 곧 마음의 감기를 일컫는 말이다. 영혼의 감기는 정신과학에서 정서적 장애인 우울증을 뜻하는 또 다른 수사학적 표현이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우울증을 과도한 에너지가 육체에 갇혀 무기력증과 절망감을 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나아가 우울증을 생각의 혼란들이 몸속에서 생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작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인생과 예술을 논하고 문학적 감성과 상상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이 가을 한 번쯤은 영혼의 감기몸살을 앓아 봄직도 하지 않을까.

영혼의 감기 바이러스에 걸리기 위해서는 ‘안톤 슈낙’과의 재회가 필요하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작은 슬픔의 조각들과 삶의 허무 속에 싹트는 우수의 편린들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슈낙의 감성언어들을 만나야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밭과 밭, 가을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 바이올린의 G현, 만월의 밤, 개 짖는 소리...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영혼의 감기몸살을 앓기 위해서는 문학적 페이소스 외에 음악적 슬픔과도 만나야 한다. 21세기의 히피를 꿈꾸는 스미스... 그의 음악은 비참하도록 슬프거나 슬프도록 아름답다. 이 세상 그 누군가 단 한 번도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음을 노래한 ‘네버 헤드 노 원 에버(Never had no one ever)’는 비참하도록 슬픈 경우이고, ‘더 퀸 이즈 데드(The queen is dead)’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경우이다. 또한 가을은 ‘모든 잎들이 꽃으로 변하는 제2의 봄’이라고 설파한 ‘알베르 카뮈’의 실존적 부조리에도 귀 기울여 볼 일이다.

오늘,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게 있다면 그것들이 무엇인지, 무심코 지나쳐 버린 사소한 시간들과 기억의 편린들이 무엇인지를 떠올리며 영혼의 감기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봐야 한다. 그러고 나면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열정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지 모를 테니까. 이 가을 ... 지친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떨어져 뒹구는 낙엽 위에 홀로 선 나뭇가지에 텅 빈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 떠도는 넋이 되어 마음껏 영혼의 감기몸살을 앓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인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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