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피란지에서 물고기를 먹어 보니 맛이 일품인지라 ‘묵’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즉석에서 ‘은어(銀魚)’란 이름을 하사했다. 하지만 환궁 이후에 다시 그 물고기를 먹어 보니 맛이 별로였다. 그래서 본래 이름인 ‘목어(木魚)’로 도로 부르라고 했다는 설을 가진 ‘도루묵’. 하지만 지금은 속초, 고성 등 강원 동해안의 겨울철 진미다. 이맘때 추위와 함께 찾아와 관광객을 유혹한다. 도루묵은 잡아 온 즉시 먹어야 제맛이 난다. 수심 10m 안팎에서 잡히는 ‘알배기’가 으뜸이다. 투박하고 큰 도루묵 알을 입안에서 톡톡 터뜨려 깨물어 먹는 재미로 특별한 식감을 선사한다. 동해안 겨울 맛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도루묵은 차갑고 깊은 바다에 산다. 얕은 바다로 올라와 산란하는 11∼12월에 잡아 판매한다. 도루묵은 너무 흔해서 화물자동차에 싣고 다니며 삽으로 퍼서 양동이로 팔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최근 1주일간 도루묵 어획량은 3.4톤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18톤의 18% 수준이다. 어획량이 줄면서 도루묵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평균 1만~2만원대였던 도루묵 한 두름(20마리) 가격이 올해는 5만원대까지 거래되고 있다. 이쯤 되면 겨울철 진객이 따로 없다. ▼명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물고기다. 도루묵이 초겨울에 떼 지어 몰려오면 반드시 명태 떼가 뒤따라온다고 해서 ‘은어받이’라는 이름까지 갖고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서유구는 저서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명태가 다산하여 전국에 넘쳐흐른다”고 했다. 그만큼 우리 연안에서 많이 잡혔으나 무분별한 남획과 기후 변화로 동해안에서 자취를 감췄다. ▼도루묵 어획량 감소 원인으로 산란을 위해 연안에 들어온 어미 도루묵을 통발이나 뜰채로 포획하는 무분별한 유어행위와 높은 동해안 수온이 꼽히고 있다. 바닷속 물고기가 제 살길 찾아 생존에 적합한 환경을 찾아다니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명태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세심하게 보살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