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2024 신년특집 신춘문예]너의 이름은 '인시아' - 동화 이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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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다. 우주의 청소부라고 불리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우주의 청소부가 하는 일은 죽은 별을 수거하는 일이다. 오늘은 지구라는 별을 수거하러 왔다. 우주 도깨비 ‘진’과 함께.

“앞으로 12시간 후 지구 도착. 이번 항해의 마지막 임무를 위해 전 승무원은.......”

우주선의 인공지능 컴퓨터 ‘사라’의 음성이 들려왔다. 제법 커다란 우주선 전체가 사라의 목소리로 잠시 울렁거렸다. 이번 임무에 파견된 승무원은 수와 진 딱 둘뿐인데 사라는 굳이 마이크를 켜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계인 자신이 이번 항해의 선장이라는 것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것이다.

수는 그런 사라가 때때로 얄밉다.

“임무는 무슨....... 쓰레기나 주우러 다니는 걸 가지고.......”

휴게실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우리가 죽은 별을 치우지 않으면 새로운 별들이 태어나지 못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너도 알잖아.”

진의 말이 틀린 것은 없지만 지구에 가까워질수록 예민해지는 걸 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번 일은 뭔가 싫은 기분이야. 내키지 않아.”

수의 예감이 잘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무슨 나쁜 꿈이라도 꾼 거야?”

“별로....... 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아닐 거야.”

수는 뭔가 말하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우주는 시커멓다. 어둠보다도 더 어둡다. 그 어둠이 조그만 빛으로 물들 때는 빛나는 별을 지나칠 때뿐이다. 어둠이 가득한 우주에서 낮과 밤을 구분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우주선의 승무원들은 규칙에 따라 사이렌이 울리면 교대로 수면캡슐에 들어가 잠을 잔다.

우주 도깨비 진은 평생 잠을 안 자도 살 수 있는 생명체다. 사라는 인공지능 컴퓨터이기 때문에 잘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이 우주선에서 잠을 자는 것은 수뿐이다. 사이렌 소리에 맞춰 수가 수면캡슐에 들어갔다. 그러나 단 두 시간 만에 잠에서 깨버렸다.

“또 깼어? 요즘 너무 잠을 못 자는 것 아냐?”

캡슐을 빠져나오자 진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잠 좀 못 자면 어때. 어차피 죽으면 계속 잘 텐데.”

수는 진이 걱정하는 게 싫었다. 일부러 기지개를 켜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죽는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면 안 돼.”

“알았어. 그냥 나도 너처럼 잠을 안 잘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러면 너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너 요즘 이상해. 뭔가 신경 쓰이는 일이 있는 거지? 털어놓고 말해봐.”

진이 이마를 맞대왔다. 결국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진에게 무언가를 감추거나 속이는 일은 불가능했다.

“지구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모습이 꿈에 보여. 나무같이 생겼는데 나무 같지는 않은 생명체가 말을 걸어와.”

“뭐라고?”

“제발 오지 말라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지구에 도착하기 전 수와 진은 지구에 관한 정보를 검색했다. 수의 꿈을 예사롭지 않게 여긴 진이 지구가 왜 멸망해서 죽은 별이 됐는지 지구의 역사를 살펴봐야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라가 보유한 엄청난 양의 지식 중 지구에 대한 것들이 영상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수는 그중에서 지구의 멸망 편을 보기 시작했다.

‘우주력 74382년 지구는 최악의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지구온난화와 사막화, 쓰레기 더미로 식물이 살 수 있는 땅의 삼분의 일이 사라진 인류는 극심한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빨리 자라고 열매를 많이 맺는 유전자 조작 식물들을 탄생시킨다. ’2차 식물‘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식물들은 자신보다 약한 식물들을 공격하거나 잡아먹는 이상행동을 일으키게 된다. 급기야 동물들과 인간까지 잡아먹는 육식식물로 진화하게 되자 인간들은 2차 식물들과 전쟁을 하게 된다. 전쟁이 길어지자 유전자 조작이 되지 않은 1차 식물들 역시 오랜 시간의 잠에서 깨어나 전쟁에 참가하게 되는데.......’

“식물들은 전 우주에서 가장 순한 종족이잖아. 그런 종족이 전쟁에 참가하다니 믿을 수가 없어.”

“더 읽어보자.”

‘생명을 잡아먹는 2차 식물들과 그것을 만들어 낸 인간에 대한 1차 식물들의 분노는 무서웠다. 뿌리를 일으켜 땅을 무너뜨리고, 산소 대신 이산화탄소를 내뿜어 숨을 못 쉬게 만들었다. 그렇게 인간과 1차 식물, 2차 식물이 서로를 공격하는 전쟁이 150년간 지속됐다. 궁지에 몰린 인류는 식물들을 향해 핵폭탄을 떨어뜨렸다. 그 결과 지구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고.......’

책을 읽어갈수록 수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핵폭탄이라니....... 어리석어.”

“수, 여기 마지막 부분을 읽어 봐.”

‘그러나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멸망했는지는 누구도 확인한 적이 없다. 우주를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1차 식물 모두가 전쟁에 참여한 건 아니라고 한다. 지구에는 1차 식물의 언어를 이해하는 몇몇의 사람들이 존재했고, 일부 1차 식물들은 그런 인간들과 다른 생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진, 이건 살아남은 생명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잖아!”

생명체가 있는 별은 죽은 별이 아니다. 그것이 단 하나의 생명체라 해도.

수는 급하게 자료실을 뛰쳐나갔다. 진이 따라가지 못할 속도였다.

수와 진은 지구라는 별에 직접 내려가 살아있는 생명이 있는지 탐사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사라도 생명체가 있는 별을 죽은 별로 착각해 임무를 수행할 경우, 받게 되는 우주의 저주를 말해주자 생각을 바꿨다.

우주의 저주를 받게 되면 평생 어느 별에도 발을 디딜 수 없다. 혼자 검은 우주를 떠돌아다니다 연료와 식량부족 등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사라 같은 인공지능 슈퍼컴퓨터는 물론 우주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가장 두려워하는 외로움의 저주다.

수와 진은 생명 탐지기를 장착한 작은 셔틀 우주선에 몸을 실었다. 수가 조종간을 잡고 진이 생명 탐지기를 조작했다. 생명 탐지기에서 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촘촘한 그물망이 뻗어 나와 지구 전체를 감싸기까지 세 시간이 걸렸다.

수와 진은 긴장된 마음으로 모니터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살아있는 생명체의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사라가 기다리고 있는 우주선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모니터 오른쪽 하단 부분에 잠깐 붉은 점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진, 방금 그거 봤어?”

“응. 내려가 보자.”

수와 진을 태운 셔틀 우주선이 붉은 점이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붉은 점을 따라가는 중에 바다가 나타났다. 예전의 지구는 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행성이라고 들었는데 바다에 떠 있는 스티로폼을 포함한 온갖 쓰레기와 썩는 냄새 때문에 악취가 풍겨왔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자그마한 섬이 있었다.

수와 진은 섬에 셔틀 우주선을 착륙시켰다. 이상한 분위기의 섬이었다. 사막처럼 모래만 가득한 섬에 붉은 안개가 가득했다. 수와 진은 섬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직 섬의 전체가 사막화가 된 것은 아닌 것인지 섬의 중앙으로 다가갈수록 검은 흙이 밟혔다. 사막화에서 회복되는 중일 수도 있었다.

오래간만에 밟는 땅의 기운은 따뜻했다. 오염되기 전의 지구가 수가 태어난 별과 거의 같은 중력과 대기를 가진 곳이라는 정보가 사라로부터 전송됐다.

‘우리는 살아있어요. 죽은 별이 아니에요. 제발 우리를 살려 주세요.’

순간 수의 머릿속을 강타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입으로 하는 말을 들은 것이 아니었다. 텔레파시처럼 머리에서 머리로 혹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되는 메시지였다.

“저곳이야! 저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수의 손가락이 섬의 정상을 향했다. 그 순간 길을 터주듯이 붉은 안개가 갈라졌다. 안개가 내어주는 길을 따라 수와 진은 걸어갔다. 마침내 섬 정상에서 보게 된 것에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것은 작은 인간을 보호하듯이 품고 있는 나무였다. 어떻게 보면 인간과 나무가 하나인 것도 같았다. 제법 많은 행성을 여행한 두 사람이지만 어떤 별에서도 이런 나무는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건 새로운 우주 생명체일까?

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무의 언어로 물어보았다.

“당신은 나무인가요?”

“나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이번에는 진이 인간의 언어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인간인가요?”

“인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죠.”

이번의 대답은 인간의 언어로 돌아왔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나무 종족들은 다른 종족의 말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졌으니까. 다만 나무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말을 하지 않는데 .......

수와 진은 계속해서 질문을 했고 나무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역시 지구는 인류가 터뜨린 핵폭탄으로 막을 내렸다. 사람도 식물도, 그 어떤 생명체도 거대한 핵폭탄의 위력 앞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겨우 살아남은 생명들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나갔다. 지구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질 지경이었다. 그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몇몇 뜻있는 거대한 크기의 1차 식물들이 인간과 동물 등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자신의 몸으로 감싸 안았다. 그 상태로 핵폭탄으로 인한 공기의 오염이 어느 정도 정화될 때까지 수백 년의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이 인간을 품은 나무가 처음으로 깨어난 것이다.

“당신들이 누군지 알고 있어요. 별의 마지막을 인도하는 자들이죠?”

죽은 별을 수거하는 우주의 청소부를 여기서는 별의 마지막을 인도하는 자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수는 우주의 청소부라는 말보다 그 말이 더욱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냈어요. 지구에 오지 말아 달라고. 아직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다고. 그런데도 당신들은 이곳에 왔군요.”

원망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지구에 내렸어요. 단 하나라도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는 한 지구는 죽은 별이 아니니까.”

“그럼 지구를 살려주시는 건가요?”

수와 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눈빛 속에 하고 싶은 말을 읽었다.

“우리가 지금 당장 당신을 살려준다고 해도 조만간 지구는 죽은 별이 될 거예요. 지금 살아있는 생명체는 당신 하나뿐이니까. 당신 혼자만의 힘으로 지구를 다시 살릴 수는 없어요. 그러면 또 다른 우주의 청소부가 지구를 청소하러 찾아오겠지요. 그래도 괜찮나요?”

인간을 품은 나무는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조용히 움직임을 멈춘 초록빛 나뭇잎들이 그렇게 보였다. 잠시 후 생각을 마친 듯 여리고 작은 잎들이 나뭇가지에서 토독 토독 잎을 틔웠다.

“지구가 다시 숨을 쉬고 있어요. 그렇게 느껴져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저의 동료들도 다시 눈을 뜰 거예요. 그렇게 믿어요. 그러니까 지구는 다시 푸르러질 수 있어요. 당신들이 지구에 기회만 준다면.”

수와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이야기를 사라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사라와 이야기를 나눈 끝에 눈앞의 인간을 품고 있는 나무에 어울리는 새 종족의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지난 아픔을 잊고 새 출발을 하라는 응원이었다.

오랜 생각 끝에 만들어진 종족의 이름은 ‘인시아’. 수를 탄생시킨 종족의 말로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중에는 평화, 탄생, 희망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종족의 이름을 붙여주자 기쁜 듯이 나무가 가지를 뻗어 수와 진의 머리에 살짝 닿았다가 멀어져 갔다. 수와 진은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이 넓은 지구에 홀로 생존해있는 단 하나의 인시아 종족을 남겨두고 다시 사라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셔틀 우주선에 올랐다.

“외롭겠지?”

뒤를 돌아보며 수가 말했다.

“응. 하지만 살아있잖아. 다른 친구들이 돌아올 거라는 희망도 가지고 있고.”

진의 대답에도 수는 한동안 멀어져 가는 인시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있잖아, 진. 우리 별도 언젠가는 죽은 별이 되겠지?”

진은 수의 얼굴에서 쓸쓸함을 보았지만 아는 체하지 않았다.

“걱정 마. 아직은 괜찮아. 아주 먼 얘기야.”

수는 잠시 진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보았다. 수많은 인시아들이 서로 어울려 웃고 떠들며 살아가는 새롭게 태어난 푸른 지구를.

하늘 위로 사라가 기다리는 우주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러스트=조남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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