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규하(1919~2006년) 전 대통령이 원주시내 최대 알토란 지역으로 꼽히는 강원특별자치도 옛 종축장 부지 일부를 강원도에 희사(喜捨)한 것으로 확인돼 감동을 주고 있다. 최 전 대통령을 다시 평가하고 선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어 주목된다. 세상만사를 꿰뚫는 상식은 잘한 자는 칭찬받고, 잘못한 자는 질책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제는 올바른 평가다. 일도양단식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최 전 대통령은 “강원도의 축산업 발전을 위해 종축장이 필요하다”는 당시 함종한 강원도지사의 요청에 1만여평에 달하는 집안의 선영을 단돈 15원에 강원도에 매각했다. 사실상 희사한 것이다. 최 전 대통령이 15원에 매각한 반곡동 부지의 현재 공시지가는 1㎡당 281만6,000원으로, 공시지가로만 총 972억원에 이른다. 본보가 확인한 결과 강원도는 1970년대 원주 반곡동 일원에 23만여㎡ 규모의 대단위 종축장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최 전 대통령이 소유했던 부지(3만4,522㎡)를 매입했다. 최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축산업을 일으키는 물꼬를 터 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전 대통령의 토지 희사 결정은 작게는 지도자의 고향 사랑에서 출발했을 것이고 크게는 나라 발전이라는 집념의 결과라고 본다. 지도자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최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10대 대통령으로 1975년부터 국무총리로 재직하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해 12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전두환 등 신군부의 압력으로 8개월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역대 모든 한국 대통령에겐 공과가 있다. 최 전 대통령에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있으면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비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10·26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유신헌법에 따라 긴급조치까지 내릴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두환 중앙정보부 서리 겸직 인정, 5·18 언급 회피 등으로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최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신군부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여기서 대통령 권한을 발휘하는 순간 또 다시 반란이 일어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제 최 전 대통령의 재조명으로 잘된 부분은 더욱 선양해 나가야 한다. 최 전 대통령처럼 사심을 버리고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고향 사랑의 실천 공적을 보인 지도자는 드물다. 특히 고향인 강원도 발전을 위해 토지를 기꺼이 내어준 최 전 대통령의 향토애는 영원히 기억돼야 한다. 우리는 이제 혼란을 이겨내고 상처를 서로 치유하며 공과를 제대로 평가할 줄 아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뤘다. 최 전 대통령의 선양사업이 통합과 상생의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