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하루 열 명 올까 말까"…사라지는 학교 앞 문구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수십년 자리 지킨 문구점 우후죽순 폐업
도내 문구 소매점 10년 사이 4분의1 줄어
저출산, 교육정책 변화, 대기업 공세 원인

27일 강원대 인근 A문구점에 점포정리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김현아 기자

학교 앞 만물상으로 불리던 동네 문구점들이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대형 유통점, 온라인 판매점이 세를 넓히며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난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25년째 한 자리를 지켜온 강원대 인근의 A문구점은 최근 점포정리 업체에 전 제품을 원가에 넘겼다. 다음 달 31일로 폐업일을 확정지으면서다. 소식을 듣고 찾은 A문구점 외부에는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린다'고 적힌 안내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지가 소복히 쌓인 공책, 장난감 등은 평소보다 50~70% 저렴한 가격에 팔려나갔다.

점포정리 업체 직원 육모(58)씨는 "최근 재고처리를 맡기는 점포 중에 문구점이 가장 많다. 올들어서만 벌써 네 번째"라고 말했다.

춘천 근화초교 개교와 함께 문을 열었다는 B문구점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과거엔 직원 세 명을 둬도 인력이 부족했지만 현재는 하루 10명이 올까 말까하다. B문구점 창고엔 미처 팔지 못하고 남은 근화초 구형 체육복 재고가 쌓여있었다.

문구점 주인 박모(68)씨는 "문구점만으로는 수익이 나지 않아 4개월 전부터 새벽시장에 나간다"며 "요즘엔 학교에서 준비물을 다 나눠주니 문구점을 찾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27일 춘천 근화초등학교 인근 B문구점에서 주인 박모(68)씨가 체육복 재고를 정리하고 있다. 김현아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739곳이었던 도내 도서·문구용품 소매점은 2020년 562곳으로 10년 사이 4분의1이 줄었다. 같은 기간 이들 업종의 연간 영업이익은 160억9,000만원에서 85억600만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문구점이 문을 닫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주요 수요층인 학생이 줄고 있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도내 초등학생 수는 6만9,298명을 기록해 조사 이래 최초로 6만명대로 떨어졌다. 이는 10년 전과 비교해 16.7% 줄어든 숫자다.

문구류를 취급하는 대형 유통점이 세를 넓히고 있는 점도 업계 위협이 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집계결과, 생활용품전문 A프랜차이즈의 도내 점포(가맹, 직영 포함)는 2021년 55개에서 2022년 60개, 지난해 63개로 늘었다. 도내 가맹점 기준 이들 점포의 지난해 연 평균 매출은 14억6,445만원에 달했다.

이에 더해 문구점들은 우후죽순 세를 넓히고 있는 무인점포들과도 경쟁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 개업해 시설이 깨끗하고 신제품이 많아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교육부가 2011년부터 시행 중인 '공립초 학습준비물 지원제도' 역시 직격탄이 되고 있다. 학교가 입찰을 통해 준비물을 일괄 구매해 학생들에게 나눠주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문구점을 찾는 발길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업계는 문구소매업을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장낙전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유통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로 문구점이 매년 500개씩 사라지고 있다"며 "지역 문구 소매점에 대한 보호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인근 문구점에서 바라본 초등학교 모습. 김현아 기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가장 많이 본 뉴스

    피플&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