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강원의 점·선·면]기나긴 비경 위를 걷는 달디단 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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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담계곡 스카이전망대서 스릴 만끽
화강암 절벽 지층 한 편의 다큐 같아
동주황벽 절경 바라보면 감탄이 절로

우리나라 최고의 잔도(棧道), 그중 원픽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첫손에 꼽히는 곳 중 하나가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잔도)’이 아닐까 싶다. 잔도 트레킹을 하면서 아찔한 높이 때문에 주저하거나 짧은 거리로 인해 아쉬움을 느꼈다면 적당한 거리, 적당한 높이, 적당한 난이도의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추천한다.

■순담 들어서니, 이내 펼쳐지는 절경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잔도)은 철원 갈말읍 군탄리에 자리한 순담계곡에서 드르니마을 입구까지 한쪽 방향 3.6㎞에 이르는 구간을 절벽 옆에 데크로드를 만들고 다리를 놓아 조성한 산책길이다. 보통 순담계곡에서 드르니마을 방향으로 걷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순담’이 입구이고 ‘드르니’가 출구라는 뜻은 아니다. 두 곳 모두에 별도의 매표소가 있으니 컨디션에 따라, 주차 상황에 따라 들머리, 날머리를 바꿔 가며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드르니에서 순담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물이 흐르는 모습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순담에서 드르니 방향으로 코스를 정했다. 주상절리의 모양을 형상화한 한탄강 주상절리길 게이트(순담)를 지나치면 그대로 코스 안에 들어설 수 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쉼터가 등장한다. 순담계곡 전망쉼터. 여기서는 녹색빛 머금은 한탄강에 살포시 담긴 순담계곡의 멋스러운 정취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감춰진 비경, 이제는 걸어서 만난다

순담계곡은 쉼터에서 바라볼 때 조금의 거리감은 느껴지지만 수십만년 강물이 빚어낸 각양각색 화강암의 향연은 꽤나 멋스럽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순담계곡부터 드르니마을 방향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즐기기 위해서는 래프팅을 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이 구간은 딱히 강변이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없을 뿐더러 강변길 자체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래프팅 승하차 지점인 순담계곡 모래사장에서 고개를 한껏 빼고 바라보는 정도가 풍경을 볼 수 있는 최대치였다. 그런데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 순담-드르니 잔도 구간이 그 어려운 걸 해낸 거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예고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풍경들이 참 아름답다. 그러다 만나는 순담 스카이전망대. 아까 쉼터에서 본 풍경을 살짝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뿐인데도 길 자체가 반원 모양으로 한탄강 위 공중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으니 심장 쫄깃, 스릴 만점이다. 사람에 따라 공포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반원 타고 한탄강 위, 그 한가운데에 서 보시길. 순담 스카이전망대처럼 코스 중간에 만나게 되는 전망대는 모두 세 곳이다. 그리고 순담계곡 전망쉼터를 포함해 열 곳의 쉼터가 더 있고 이제 막 발길이 닿은 단층교를 시작으로 지질 특성에 맞는 작명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열세 곳의 다리를 모두 건너고 난 후에야 이 길의 종착점인 드르니매표소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잔도로 꼽히는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

■길 위에 스토리텔링이 흐른다

순담계곡에서 시작된 이 길에서 처음 만난 다리 단층교. 잔도 구간에서 만나는 첫 잔교(棧橋· 절벽과 절벽 사이에 높이 걸쳐 놓은 다리)다. 이 단층교의 스토리는 바로 왼쪽 벽에서 펼쳐진다. 화강암 절벽 지층이 서로 어긋나 갈라지면서 만들어진 단층의 모습은 한편의 자연 다큐를 보는 것처럼 발길을 따라 이어진다. 한탄강의 빠른 물살이 강바닥을 파헤친 것은 물론 화강암까지 깎아버린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선돌교를 지나 이내 나타나는 구리소 전망쉼터를 지나면 돌개구멍교, 한여울교를 지나칠 수 있다. 한여울교에서 한탄강을 굽어보면 급경사를 타고 내려온 강물이 삐죽 고개 든 바위를 때리며 아래로 떠내려가는데 이때 많은 산소가 발생해 강을 정화시킨다고 하니 한탄강의 허파라고 할 수 있다. 수직의 절벽을 올려다보며 앞으로 전진. 그러다 만나는 수평절리교. 바위 표면이 가로 방향으로 금이 그어진 수평절리(판상절리)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수직의 돌기둥 모양으로 갈라진 주상절리가 계륵인 이곳에서 수평의 선으로 나뉜 수평절리와의 만남은 조금은 생경한 느낌이다. 한참을 쳐다보다 다리 끝에 있는 널찍한 쉼터 발견. 발길을 옮기려는 순간, 눈길이 다시 수평절리에 꽂힌다. 아까부터 뭔가 닮았다 싶었는데, 영락없이 시루떡이다. 수평절리교를 벗어나 두 번째 쉼터, 샘소 전망쉼터 위에 오른다. 여기서도 시루떡 바위(?)는 제법 잘 보인다. 샘소는 강바닥에서 샘물이 솟아 나와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야기만큼이나 신비한 기운 같은 것이 감도는 분위기다. 우두커니 서서 눈길여행. 그런데 맞은편 현무암 절벽의 머리 쪽. 파란 하늘의 시작을 찾아 올리던 맞은편 시선 끝에 여러 채의 펜션이 걸리는데 완벽한 풍경 속에 찾아낸 안타까운 흠이라고 할까.

■절경 지나치면 또 다른 절경, 감탄사 조절이 필수

어느새 잔도를 벗어나고 숲길을 지나치는 데크로드에 접어든다. 나무들이 길을 따라 서 있기는 하지만 오른쪽 아래로 비치는 아름다운 한탄강의 모습은 여전히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그러다 만나는 바위그늘교. 다리 끝자락에 다다르니 하늘을 향해 계단이 시작된다. 이 인근에서는 화강암의 박리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 세월의 힘으로 단단한 바위를 한 더께 한 더께 벗겨낸 흔적들이 이렇게 보면 다리이고, 저렇게 보면 동굴로도 보이는 모양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고개 들어 건너편을 바라보니 울퉁불퉁 현무암 절벽, 주상절리의 향연이 병풍처럼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데 그야말로 절경이다. 아름다운 풍광의 순담계곡에서 시작해 한탄강의 물빛을 마음속에 담았다가도 이내 세월이 빚어낸 바위에 관심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이제는 심상치 않은 아우라의 주상절리가 등장해 날 봐 달라 재촉하니 그저 난감할 따름이다. 절경을 지나쳐도 또 절경이 나타나니 여기서는 감탄사 조절은 필수다.

■철원이어서 볼 수 있는 동주황벽의 비경

주상절리 절벽은 한탄강 물길을 타고 잔도를 끊임없이 따라붙는다. 동주황벽쉼터에 닿아 쉼을 가질 때까지도 그 기세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동주황벽은 햇볕을 받으면 황토색으로 변한다고 해서 황벽(黃壁)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여기서 동주(東州)는 철원지역의 옛 지명이다. 절벽의 아래쪽은 거뭇하고 위쪽은 황토색과 암갈색을 띠고 있지만 햇볕을 온 몸으로 받은 동주황벽은 점차 화사한 황토 빛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오직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잔도)을 걸어야만 누릴 수 있는 호사가 바로 동주황벽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트레킹의 막바지. 현무암과 화강암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현화교를 지나고 돌단풍교, 쌍자라바위교를 시나브로 지나친다. 그래도 여전히 개성 강한 모습의 바위 컬렉션들은 계속해서 나타나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어느새 마지막 전망대 드르니 스카이전망대에 입장한다. 터덜터덜 마지막 다리인 주상절리교를 지나고 너른바위쉼터를 스치고 나니 소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전라도 사투리로 깎아지른 절벽을 말한다는 민출랑쉼터에 도착해 또 다른 절벽과 조우한다. 오르막 계단이 끝나면 드르니매표소 도착이다. 한탄강의 절경은 아름다운 동행을 쉬이 놓지 않고 끝까지 우리의 옆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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