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 봉산동 토담집에는 군 장성에서부터 장바닥 아주머니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이 그토록 만나고자 했던 이는 바로, 원주 출신 교육자이자 우리나라 생명운동의 스승이라 불리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다. 오는 22일 그의 서거 30주기를 맞아 ‘장일순 평전-걸어다니는 동학, 장일순의 삶과 사상’이 세상에 나왔다.
책은 민주화를 위해 많은 이들과 걸어온 그의 인생을 반추한다. 일제 강점기 원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과 서화를 배웠던 그는 꿈에 그리던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과 함께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인 원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죽는 그날까지 원주를 떠나지 않고 교육 운동과 군사정권에 대한 반독재 투쟁은 물론 파괴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생명운동까지 벌인다.

흉흉한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킬 줄 아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죽음이 아닌 세상을 살림으로서 세상을 바꾸고자 했고, 나와 척을 진 상대까지 사랑하고자 했다. 지금까지도 보듬어 안는 따뜻한 혁명만을 추구했던 장일순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모여 그의 사상을 배우고 있다. 특히 책에는 이현주 목사, 김지하 시인, 언론인 리영희 등 장일순과 얽힌 일화를 담아내 눈길을 끈다. 언론인 리형희는 “구슬이 진흙탕에 있어도 나오면 그대로 빛을 발하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은 이제 없겠지요”라며 떠난 그를 그리워했다.

서예가이기도 했던 그는 생전에 2,000점이 넘는 서화 작품을 남겼지만, 단 한 점도 돈을 받고 판 적이 없다. 게다가 당시 농민을 살리고 수해 입은 노동자를 살리고자 원주에서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실시해 주민 스스로 운영하는 마을 은행을 만들었다. 그 덕에 지금의 신협이 강원도와 전국으로 퍼질 수 있었다.
장일순의 자료를 토대로 책을 집필한 한상봉 가톨릭일꾼 편집장은 “개문유하 開門流下, 문을 열고 아래로 흘러라라는 뜻이다.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을로 흘러가 착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면 좋겠다”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아름답고, 그래서 거룩한 마음이 발생하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고 전했다. 삼인 刊. 556쪽. 3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