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나는 ‘강원특별자치도’가 싫다

현진권 강원연구원장

개인이나 단체의 존재는 이름에서 출발한다. 이름은 여러 형태로 불린다. 법적인 이름이 존재하고, 친구 사이에 불리는 이름과 가족이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 다르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친한 관계일수록 짧고, 친근한 어감을 가진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강원도의 법적인 공식 이름은 ‘강원특별자치도’가 되었다. 그래서 모든 공식 자리에서는 ‘강원특별자치도’로 표기된다. 당연한 절차다. 그러나 사적으로 우리 지역을 이야기할 때, ‘강원특별자치도’라는 용어는 어색하고 번거롭다. 그래서 친근한 맛이 없다. 그래도 애써 누군가가 ‘강원특별자치도’로 말하자고 주장하면, 반발할 논리도 없다. 그러나 무언가 찝찝하다. 언어는 습관의 결정체다. 아무리 법적으로 한순간에 바뀌었다고 해도, 우리가 통상 사용해 온 관습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나쁜 것일까?

법, 문법, 정부 지침보다 더 중요한 것이 관습의 언어다. 한때 정부는 중국집의 대표 음식인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공식 석상이나 방송에서만 ‘자장면’이라고 하고, 모든 국민은 ‘짜장면’이라고 했다. 문법이나 정부의 강요보다 더 강한 것이 관습에 의한 용어다. 결국은 관습의 언어가 문법 논리나 정부에서 제시한 언어를 이겨, 지금은 ‘짜장면’이 표준어가 되었고, ‘자장면’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름을 축약해서 부른다. 간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모친은 필자를 ‘곤’이라고 불렀다. 이런 호칭이 너무 그립다. 미국에서는 William을 Bill, Robert를 Bob 등으로 사용한다. 특히나 젊은 세대는 축약한 용어 사용이 일반화되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아아’라고 한다. 정확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말하면, 벌써 꼰대 냄새를 풍기며 사이가 어색해진다.

우리 지역의 공식적이고 법적인 이름은 ‘강원특별자치도’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우리 지역을 ‘강원특별자치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고 친근하지 않다. 더욱이 우리 지역 이외에 어떤 사람도 우리 지역을 ‘강원특별자치도’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강원도’라고 한다. 타 지역 사람들에게 ‘강원특별자치도’라고 불러 달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우리도 제주지역을 ‘제주특별자치도’라고 부르지 않고, ‘제주도’라고 부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이름을 그대로 두는 것이 친근하고, 정다운 어감을 유지할 수 있다.

‘강원도’라는 이름은 628년 동안 사용되었다. 이미 우리 지역은 ‘강원도’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있고, 이 이름에는 600여 년 동안 강원도가 만든 이미지가 담겨 있다. 투박하고, 강인하고, 순진한 속성이 담겨 있고, 감자, 설악산, 동해 등 이미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강원도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600여 년 동안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문화가 담겨 있는 이름이다. ‘강원도’라는 이름에 담긴 문화의 그림자를 애써 우리 스스로가 지울 필요가 없다. 물론 ‘강원특별자치도’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600여 년이 지나면, 새로운 이미지가 담길 것이다. 그러나 그건 너무도 먼 세월이다.

강원 분권 시대에 강원도를 부자로 만들 수 있는 정책 자유를 펼 기회가 왔다. 지금 시대에서 이미지와 선입관은 중요한 상품이다. 강원도라는 이름에 600여 년 동안 축적된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강원특별자치도’가 싫다. 그냥 투박한 감자 이미지가 서린 ‘강원도’가 더 정겹다. 물론 공식 자리나 문서에서 우리 지역의 이름은 ‘강원특별자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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