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가 물었다. “강원도는 왜 아동보호에 소극적일까요?” 강원도에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가 답했다. “강원도라서 아닐까요.”
올 6월부터 지금까지 강원도 아동 정책의 현주소를 짚고자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서’를 제목으로 한 기획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실 강원도에서 태어난 기자는 어릴 때부터 ‘강원도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듣고 자라다 보니 현상 유지에만 급급한 강원도 아동 정책 앞에서 좌절보다는 ‘강원도라서’를 이유로 체념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매번 강원도라는 단어를 방패 삼아 언제까지 강원도에 사는 아동을 욕되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아동 정책 개선 방향을 논하는 기사를 쓰며 깨달은 것은 강원도는 아동이 살아가기에 척박한 지역이 맞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래 세대에게 ‘강원도라 어쩔 수 없다’는 말만을 늘어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강원도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태어난 아이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보건복지부는 가정폭력 등 아동학대로 어려움을 겪는 아동을 보호하고자 아동보호전문기관을 2025년까지 93개소에서 120개소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강원도는 현재 5개의 기관 외에 더 확장할 계획이 없다. 기관을 맡아줄 법인도 없고, 예산도 없다는 것이 이유다. 게다가 강원도를 제외한 광역지자체는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깨닫고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나섰다. 강원도는 여기서도 열외다. 지난해 도내 A시에서 학대로 아동이 사망했음에도 A시청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은 여전히 2명에 불과하다.
아동을 위한 심리치료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춘천과 원주, 강릉을 제외하고는 사설 심리치료시설마저 전무한 탓에 트라우마를 입은 아동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평생 학대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야 한다. 이에 관리가 시급한 정신장애 등 고위험군의 사례를 전담해 처리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에서 2021년 강원도에 거점심리지원팀을 신설했다. 이마저도 인력이 없어 문제다. 해당 팀은 올 1월부터 꾸준히 모집 공고를 냈음에도 지원자가 없어 현재 직원 혼자서 상담을 비롯한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다시 물어보겠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옳을까? 아프리카의 속담 중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저출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꼭 거론되는 이야기 중 하나다. 급기야 마을을 지자체와 정부로 바꿔 말하며 아이를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정성이 필요한지를 강조한다. 그런데 왜 아직도 강원도는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고 싶은 아동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지만, 어른이기에 아동을 지켜야 할 공동의 의무가 있다. 더는 ‘열악한 강원도’를 이유로 내세우며 아동의 행복을 방치하지 않았으면 한다. 더 많은 강원의 아동이 희생되기 전에 이제는 ‘강원도라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강원도이기 때문에’로 변화해야 할 때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