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조선왕조실록·의궤 톺아보기] 여인열전 ⑤ 정난정(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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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난정이 윤원형의 전처를 독살한 내용을 담고 있는 명종실록 31권(명종 20년 9월 8일) 기사 내용.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여인들의 이야기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그 평가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들의 삶이 상당히 입지전적이었다는 것이다. 천민의 신분에서 거상이 돼 백성을 구했거나 희대의 악녀로 변신해 국정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예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힘을 갖추는데는 상당한 인내와 고난의 시기를 겪은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그러한 노력으로 왕비(문정왕후)의 올케 자리에 까지 오른 또다른 악녀가 있었으니 정난정(鄭蘭貞·1506~1565)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연산군을 뒷배로 두고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던 장녹수(1470~1506)가 세상을 떠난 해에 태어났으니 이쯤되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참으로 절묘하기까지 하다고 하겠다. 대중에게 정난정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TV 드라마 ‘여인천하’를 통해서다. 이제는 고인이 된 강수연 배우의 열연으로 기억되는 드라마다. 이어 또다른 드라마 ‘옥중화(2016년)’에서 정주미 배우가 정난정 역을 맡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천민에서 정1품 정경부인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인 만큼 캐릭터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SBS 드라마 여인천하. 사진=SBS 홈페이지(https://programs.sbs.co.kr)

정난정이 조선왕조실록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552년(명종 7년)에 이르러서다. 정4품 시강관(侍講官)으로 활동한 정난정의 사촌인 정준의 거만하고 무례함을 설명하면서 등장한다. 임금에게 말하면서 한 손으로 바닥을 짚거나 웃기도 하는 등 한마디로 시건방진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정)준은 곧 윤원형의 첩 정난정의 종형(從兄)으로, 사람들이 그의 기세를 두려워하여 비행을 규탄하지 못하였다.(명종실록 13권, 명종 7년 3월 14일)” “정준은 음험하고 경박한 성품으로 윤원형의 위엄을 빌어 대관(臺官)이 되어 마음내키는 대로 인물들을 공격하였다.(명종실록 13권, 명종 7년 6월 18일)”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그 중심에는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文定王后·1501~1565)가 자리하고 있었다. 수렴청정을 통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동생이 윤원형이고, 첩이 정난정이다. 정난정이 후에 정실의 자리까지 꿰차게 되지만 첩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권세는 하늘을 찌른 것으로 보인다. 실록에 기록된 명종 7년은 여전히 수렴청정이 진행되던 시기이기 때문에 문정왕후를 중심으로 호가오위하는 외척들의 만행은 날로 심해졌다. 하지만 이정도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만도 못한 것이었다. 정난정이 첩에서 벗어나 윤원형의 정실이 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은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게 한다. 윤원형이 임금에게 허락을 받아 자신의 부인과 이혼을 한 후, 정난정은 쫓겨나 홀로 지내고 있던 전부인 김씨를 독살하는 만행까지 저지른다.

“김씨가 매우 굶주려서 정난정에게 먹을 것을 구하자 정난정이 음식 속에 독약을 집어넣고 몰래 구슬을 시켜 김씨에게 올리게 하여 김씨가 먹고 즉시 죽었습니다.” 윤원형의 장모 강씨가 올린 소장 내용이다. 기록을 보면 형조에 소장을 내는 그 순간까지도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온 집안이 모두 그 원통함을 알고 있었으나 대단한 위세를 두려워하여 감히 소장을 올리지 못하였습니다.(이상 명종실록 31권, 명종 20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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