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정칼럼]심증개시(心證開示)에 관한 작은 생각

김장환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판사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에서 2023년 법관평가 사례집을 발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언론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위 사례집은 변호사들이 실제 재판과정에서 겪은 구체적 경험을 긍정적인 사례와 부정적인 사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부정적 사례로 소개된 내용 중에 유독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재판 진행 도중 결론을 미리 얘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선입견을 드러내고 소송대리인에게 불필요한 발언을 하였다”는 내용이었다. 판사가 재판과정에서 형성된 심증을 드러내는 것이 옳은지에 관하여는 오래전부터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

민사소송법 제202조는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 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고, 재판과정에서 판사가 심증을 드러내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재판과정에서 판사가 심증을 내비치는 것은 재판의 투명성, 공정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판사가 자신의 심증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면, 당사자나 소송대리인은 판결문이 공개될 때까지 판사의 판단과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판사는 재판과정에서 심증을 내비침으로써 당사자나 변호사에게 판단과정이나 사건의 쟁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거나 반박할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판사가 특정 증거에 대해 의문을 표하면, 당사자나 변호사는 그 증거를 보강하거나 다른 증거를 제시하여 그 의문을 해소할 수 있다. 재판과정에서 형성되는 심증을 내비침으로써,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에 기반을 두어 판단을 내린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재판의 결과가 더욱 공정하고 정당하게 도출될 수 있다.

그러나 판사의 심증이 지나치게 명확하게 드러날 경우, 재판의 공정성이나 중립성에 대한 의심이 초래될 수 있다. 판사의 심증이 과다하게 드러난 발언을 듣게 된 당사자나 변호사로서는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다고 느낄 수 있고, 자신들의 주장이 무의미하게 느끼게 될 수 있다. 판사가 드러낸 강한 심증은 당사자나 변호사로 하여금 소송자료 제출을 주저하게 할 수 있어 재판의 정상적인 진행을 방해할 수 있다. 변호사들이 ‘판사가 재판 진행 도중 결론을 미리 얘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부정적 사례로 꼽고 있는 이유는 재판의 공정성, 중립성이 훼손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판사가 심증을 드러내는 것은 재판의 투명성이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자칫 공정성이나 중립성이 의심받을 수 있는 위험이 동반된다. 그렇기에 판사가 심증을 드러낼 경우 그 범위는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주요 쟁점이나 그에 대한 법적인 해석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때와 같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심증을 내비치되, 그러한 심증을 형성하게 된 배경과 논리적 이유를 제시하고, 이러한 심증이 종국적인 것이 아님을 밝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무엇이든 ‘적당하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막연한 기다림이 주는 무력감을 알기에 기나긴 재판 당사자나 관계자에게 예측가능성을 드리고 싶다. 하지만 판사의 발언이 당사자에게 주는 무게감을 알기에, 또 부족한 인간이기에 법정에서 주저하고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피플&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