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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쉬어라, 일해라, 일하러 와라” 60대 은퇴자의 트릴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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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식 태백문화원장

장면1 “설마 퇴직하고 바로 일하는 것은 아니지요. 뭐 계획하고 있는 일거리라도 있나요. 그래도 이젠 일하지 말고 그냥 쉬어요. 청춘을, 정열을 신명 나게 공직에 다 바쳤는데 쉬어도 되잖아요. 천성이 일하는 스타일이라 그리 쉽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쉬는 것도 일하는 것 못지않게 인생 건강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는 점 잊지 마세요.”

1년여 퇴직을 앞둔 나에게 마음의 여유가, 정신의 쉼이 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주옥같은 조언이다. 별로 일할 생각도 계획도 없던 나는 사랑하는 후배님 조언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한 달, 두 달, 세 달 그렇게 무심히 1년을 쉬었다. 그리고 2년도 그랬다.

장면2 “젊은 사람이 집에만 있으면 어떡해. 지난해에는 봄부터 집 짓고 가을에 마당 만들고 했으니 나름 바빴다 치자. 하지만 올해는 뭐 아무것도 하는 일 없잖아. 젊은 사람이 주야장천 집에만 있으면 어떡해. 뭐라도 해야지, 안 그래?”

이웃하고 있는 80세 가까운 옆집 큰형님께서 어느 날 아침 운동을 하고 들어오는 마당에서 마주치자 하신 말씀이다. 퇴직 후 1년 뒤 조금은 산촌스러운 내 어릴 적 추억이 정겨운 절골에 집을 짓고 이웃한 작은 동생으로 살고 있는 내가 큰형님 눈에는 젊은 사람이다. 그런 젊은 놈이 빈둥빈둥거리며 두문불출하는 은둔생활이 다소 처연하게 보였는가 보다.

장면3 “퇴직하고 뭐 할 거야. 놀지 말고 출근해, 쉬는 것도 천천히 쉬어야 돼, 갑자기 스톱하고 세우면 기계에 이상이 생기는 거 알지? 출근하라는 종용에 일 년, 이 년이 지나도 묵묵부답인 나에게 독촉은 멈추지 않는다. 이젠 놀 만큼 놀기도 했잖아. 적어도 70세까지는 일할 수 있는 우리들 건강이잖아. 고민 그만하고 내일이라도 출근해.”

정년퇴직 한 내가 아직 써먹을 데가 있다는 건가. 퇴직과 동시에 나를 일터로 유혹한 친구님이다. 퇴직 전부터 가끔 술잔을 같이할 때면 약방의 감초라고 해야 할까. 그럴 때마다 나는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곤 했다. 상대가 호응을 안 하면 어느 순간 그만할 법도 한데 지치지도 않고 콧노래 부르듯 수년에 걸쳐 지겹도록 청한다. 솔직히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도 좀 어설프고 자칫 잘못하면 꼴같잖은 자존심이나마 일순간 손상되지는 않을까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이 커, 세상 편히 살자는 생각이 깊어서 선뜻 응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60대 은퇴자는 무조건 쉬어주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전 직장 동료님, 요즈음의 60대는 젊은이니까 아직은 일해야 할 세월이라는 이웃 형님, 기계는 기름을 끊이지 않고 쳐 줘야 녹슬지 않는다는 친구님, 나는 하나인데 쉬어라, 일해라, 일하러 와라 등 각기 다르면서도 같은 바람이 나를 어지럽힌다.

60대 은퇴자의 딜레마를 넘어선 트릴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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