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7일(현지시간) 헤즈볼라가 주로 쓰는 무선호출기(삐삐) 수백 대가 동시에 폭발해 11명이 숨지고 약 4천명이 다쳤다고 로이터통신이 레바논 보건당국을 인용해 보도했다.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을 다짐했다.
로이터·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폭발은 레바논 남부와 동부 베카밸리,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 등 헤즈볼라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레바논 전역에서 발생했다.
레바논 보건당국은 부상자 가운데 약 400명은 위독한 상태라고 전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헤즈볼라 무장대원과 조직원의 10살 딸 등이 포함됐다.
보건당국은 대부분 피해자가 손을 다쳤고, 일부는 손과 복부에도 부상을 입었다고 덧붙였다. 폭발은 오후 3시30분께부터 1시간가량 계속됐고 일부는 호출이 울려 피해자들이 화면을 확인하는 도중에 폭발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스라엘·레바논과 국경을 맞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호출기가 폭발해 헤즈볼라 대원 등 14명이 부상한 것으로 시리아인권관측소는 파악했다.
모즈타바 아마니 레바논 주재 이란 대사도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이란 언론들이 보도했다.
헤즈볼라는 성명에서 "이스라엘에 전적인 책임을 묻는다"며 "반드시 정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마스는 "레바논 시민을 표적으로 삼은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의 테러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은 이날 폭발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레바논 정부는 내각회의 이후 "레바논의 주권을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이스라엘의 범죄적 공격을 만장일치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지아드 마카리 레바논 정보장관은 이스라엘의 책임을 묻기 위해 유엔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바논 보건부는 모든 시민에게 호출기를 즉시 폐기하라고 요청했다.
헤즈볼라는 최근 몇 달 사이 통신보안을 위해 호출기를 도입했으며 이날 폭발한 호출기에는 대만 업체 골드아폴로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지난 2월 이스라엘이 위치 추적과 표적 공격에 활용할 수 있다며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경고했다.
서아시아·북아프리카 지역 디지털인권단체 SMEX는 이스라엘 측이 기기를 조작하거나 폭발장치를 심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퍼(Beeper) 또는 국내에서 '삐삐'로 불린 무선 호출기는 호출음이나 단문 메시지를 주고받는 통신기기다.
이스라엘 측은 폭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날 폭발 사건은 이스라엘 안보 내각이 레바논과 접경지역인 이스라엘 북부 주민들의 안전한 귀환을 전쟁 목표에 공식적으로 추가한 지 하루도 안 돼 발생했다.
한편, 미 국무부는 레바논 전역에서 무선호출기 폭발로 많은 사상자를 낸 것과 관련, "미국은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미국은 이 사건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밀러 대변인은 이어 "우리는 전 세계 언론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팩트들을 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우리는 항상 (중동의) 확전을 야기할 수 있는 어떤 형태의 사건에 대해서든 우려한다"며 "외교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우리의 메시지는 이스라엘과 다른 당사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항상 그래왔듯이 이란이 어떤 사건을 활용해 역내 불안정성과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가자전쟁의 휴전 협상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아직 말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한다"고 했으며,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비난에 대해선 "어떤 종류의 평가도 내리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