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소설 속 강원도]황폐한 기억 속으로 … 고통의 흔적 따라 떠나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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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검은 사슴'
태백 모티브 탄광마을 배경
복잡한 인간관계 섬세히 표현

한국 최초, 아시아 여성작가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의 배경이 ‘강원도’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한강앓이’로 실물이 아닌 이북(e-Book)으로 만날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평소 글쓰기가 바라보는 지향의 윤곽을 확인할 수 있게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은 주인공 인영, 의선, 명윤, 장(장종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복잡하고 깊은 심리적 여정을 다루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은 강원도 탄광마을인 황곡시. 비록 가상의 공간이긴 하지만 소설 속에서 황곡시에 ‘광산박물관’이 지어지고 있는 내용 등은 ‘석탄박물관’이 있는 태백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시가지 끝에 우뚝 솟은” 황곡산도 영락없이 태백산으로 생각되니 더 그렇다. 더군다나 두 개의 읍이 합해져 시로 승격됐다는 설정(태백시는 1981년 삼척군 장성읍과 황지읍을 합쳐서 시로 승격됐음)에 이르러서는 확신을 갖게 한다. 추리는 여기까지. 이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야기는 꿈과 환상, 현실이 혼재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소설은 주인공 인영의 꿈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깊고 기묘한 꿈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길을 걷다가 자신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인영은 일상을 유지하려 하지만, 꿈의 잔상은 그녀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명윤은 인영의 후배로, 그의 삶 역시 혼란스럽다. 그는 인영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나, 그녀와의 관계는 항상 경계선이 존재하는 듯하다. 그런 그녀에게 의선이라는 여성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의선은 인영의 집에 거처를 두게 되는데, 그녀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옷을 벗고 거리로 뛰어나가 스트리킹을 벌인 뒤 행방불명됐던 과거가 있다. 이후 의선은 인영의 집으로 돌아오며, 그녀의 기이한 행동과 그로 인한 충격이 주변 인물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명윤은 의선에게서 강한 매력을 느끼지만, 그녀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과거의 상처는 그에게 혼란을 준다.

의선은 마치 현실과 꿈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로, 과거의 폭력과 트라우마를 지닌 채 살아간다. 그녀는 명윤의 옥상에서 햇빛을 바라보며 마치 그것과 정을 통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의선은 다시 한번 사라지게 되고, 그녀를 찾기 위해 인영과 명윤은 그녀의 과거와 연결된 장소들을 방문한다. 그들은 강원도의 폐광촌과 황량한 국도를 따라 여행하며, 의선의 흔적을 찾아가지만, 그 과정에서 각자의 내면에 깊이 잠재된 감정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결국, 의선은 돌아오지 않고, 그녀의 부재는 두 사람에게 깊은 상실감을 남긴다. 하지만 그 상실감 속에서도 인영과 명윤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이처럼 ‘검은 사슴’은 상처와 치유,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인간 관계의 복잡성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강원도의 지역적 특성과 쇠락한 탄광촌을 배경으로 각 인물이 겪는 심리적 변화를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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