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선거를 바꾸는 한 표의 혁신 - 선호투표제를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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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헌 정치부장

6월 3일, 대한민국은 제21대 대통령을 선출한다. 국가 최고지도자를 뽑는 이번 선거는 단지 한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이 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풍경은 기대보다 피로에 가깝다. 여전히 반복되는 진영 대결과 네거티브 전략, 후보 검증을 빙자한 인신공격은 유권자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지난 대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민은 후보들의 정책 비전보다는 “상대가 당선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의 공포 마케팅에 더 자주 노출됐다. 심지어 후보 가족의 사생활까지 정쟁의 소재가 되었고, 언론은 매일같이 각종 의혹과 공격 기사로 채워졌다. “나는 이 후보의 정책이 좋아서 지지한다”는 말보다 “도대체 누굴 찍어야 하나 모르겠다”는 한숨이 더 많았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공약(公約)’보다 ‘공략(攻掠)’이 앞서는 현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국민을 위한 정치라기보다, 당선만을 위한 정치는 유권자들을 진영의 프레임 속으로 밀어넣는다. 비방이 넘치면 정치 혐오는 커지고, 혐오는 투표 기권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선거는 일부 진영만의 싸움이 되고 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피로한 정치가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선거가 끝나면 승자만이 정당성을 갖고, 나머지는 낙담하거나 분노한다. ‘대통령은 뽑혔지만, 나의 대통령은 아니다’는 말이 반복된다. 그 결과는 분열이다. 민주주의는 승자독식이 아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해법 중 하나가 바로 ‘선호투표제(Ranked-Choice Voting)’라고 하고 싶다.

선호투표제는 유권자가 후보를 1순위, 2순위, 3순위 등으로 순위를 매겨 투표하는 제도다. 1순위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최하위 후보를 탈락시키고 그 표를 다음 순위로 이관해 재집계한다. 이 과정을 통해 과반을 확보한 후보가 당선되는 방식이다. 이는 기존 결선투표제보다 효율적이며, 단 한 번의 투표로 유권자의 복합적인 선호를 더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제도는 중도와 통합의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진영 간 적대보다 다수의 공감을 이끄는 후보가 당선되도록 유도한다. 극단적 진영 논리에 기반한 후보보다는, 다양한 지지층에서 폭넓은 2·3순위 선호를 받는 후보가 유리하다. 즉, “내 편”만이 아니라 “상대편”도 어느 정도 수용 가능한 리더가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갈라진 국민 여론을 통합하려면 바로 이러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해외 사례도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호주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선호투표제를 채택해 제3당과 무소속의 정치적 생존을 가능케 했다. 아일랜드는 대통령 선거에 이 제도를 적용해 유권자의 만족도를 높였고, 미국의 뉴욕시, 샌프란시스코, 알래스카 등에서도 도입이 확산되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한 나라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유권자가 더 넓은 선택지를 갖고, 결과에 대한 수용성도 높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법 개정과 사회적 합의라는 과제가 있지만, 논의를 미루기엔 정치 혐오와 갈등의 대가는 너무 크다. 특히 정권 교체나 유지를 둘러싼 극심한 대립이 상수로 자리 잡은 지금, 선거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는 정치의 품격도 바꿀 수 없다. 선거가 전쟁이 아닌 축제가 되려면, 승자만이 아니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절차와 결과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또 한 번의 선택 앞에 서 있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뽑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더 중요할지 모른다. 선호투표제는 바로 그 새로운 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단지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가 통합과 공존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제도적 토대가 될 수 있다.

대선 D-8. 지금이야말로 선거제도의 방향을 바꿀 ‘다음 한 수’를 고민할 때다. 우리의 한 표는 대통령만이 아니라, 정치의 미래를 뽑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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