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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전윤호 시집 ‘사랑의 환율’…“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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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과 불균형 속에서 피어난 서정의 무늬

전윤호의 신작 시집 ‘사랑의 환율’은 사랑의 불균형과 교환에 대한 묵직한 은유를 던진다. 시집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는 깊은 고독과 상실이다. 그 속에서 시인은 사랑과 이별을 독자적인 서정으로 형상화한다. 특히 자신의 고향과 삶의 터전을 시 속에 녹여내면서도, 그 정서의 울림은 보편적 인간 경험으로 확장된다. 그런면에서 이 시집은 지역성과 보편성이 긴장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서정시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표제작인 ‘사랑의 환율’은 이 시집 전체의 정조(情調)를 상징처럼 담고 있는 시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라는 단정에서 시작하는 이 시는, 짝사랑이라는 사랑의 불균형을 전윤호표 은유로 탁월하게 풀어낸 점이 눈길을 끈다. 사랑이란 서로 다른 화폐와 같아서 같은 가치로 환전할 수 없음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시인이 말하는 사랑은 단지 연애의 감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가 노래하는 사랑은 시간과 장소, 잃어버린 풍경과 얽혀 있다. ‘매둔 동굴’, ‘내 안의 오랍뜰’, ‘삼천 년의 잠’ 같은 시편 속에는 정선, 여량, 아우라지 같은 실제 지명이 불쑥 불쑥 떠오른다. 시인은 그 지명들을 통해 스스로의 삶과 기억을 더듬고, 그 안에서 감정의 뿌리를 길어 올린다. 토박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 땅의 시간은, 결국 독자의 마음에도 낯익은 그리움으로 번진다.

◇전윤호 시인. 강원일보 DB

시집의 또 다른 축은 일상 속 잔상을 붙잡는 감각에 있다. ‘내 시계’의 화자는 매일 시간을 다시 맞춰야 하는 오래된 손목시계를 사랑한다. 그 서툰 시계는 곧 사랑을 조율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몸짓이자, 시간의 편차를 용납하는 관계의 리듬이다. 이처럼 전윤호의 시는 오래된 것, 느린 것, 비효율적인 것에 애정을 보낸다. ‘슬픈 항해’, ‘밤노래’, ‘소나무’에 이르기까지, 시집은 일방향적인 감정, 끝끝내 완성되지 않는 관계, 지나가버린 시간들 속을 뚜벅뚜벅 걷는다. 시집을 읽다 보면, 오래전에 지나쳐온 마음들이 고개를 든다. 미처 건네지 못한 말, 닿지 못한 사랑이 그리움으로 남아 다시 피어난다. 그리고 꼭 같은 무게로, 같은 가치로 사랑하지 않아도,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빛낼 수 있다는 것을, 전윤호의 시들은 넌지시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달아실출판사 刊. 152쪽. 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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