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원지역의 대표적인 향토문화축제인 태봉제는 후삼국 시대 한반도 중부지방을 장악했던 태봉국과 군주 궁예를 기억하고 군민들의 화합을 다지는 행사다. 철원군민의날인 10월21일을 기념해 1982년부터 시작됐으며 1991년 태봉제로 명칭을 변경해 매년 10월 초에 열리고 있다. 궁예를 기리는 태봉제례를 시작으로 읍·면 체육대회와 문화행사 등이 사흘에 걸쳐 진행된다. 1,00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태봉국과 궁예는 아직 철원군과 군민들의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궁예는 892년 양길의 부하가 돼 치악산 석남사에 머물다 894년 대관령을 넘어 명주를 공략, 귀부를 받아냈다. 이후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인제, 화천, 김화 등 강원 북부지역을 정복, 철원에 입성한다. 왕륭, 박지윤으로 대표되는 패서지역 호족도 굴복시키며 901년 송악(개성)을 수도로 정하고 국호를 고려라고 했다. 하지만 송악은 패서 호족들의 영향력이 여전했고 궁예는 왕권 강화 등 여러 이유로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고치고 수도를 철원으로 옮긴다.
철원에는 왕건에게 쫓긴 궁예의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지명이 여럿 남아있다. 한탄강주상절리길 코스로 잘 알려진 드르니마을은 궁예가 왕건을 피해 명성산으로 향하던 중 들렀다 하여 '드르니'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라를 잃은 궁예의 기록은 승자에 의해 가려지면서 그의 생애를 자세히 알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태봉국과 궁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단서는 아직 남아있다. 철원군 홍원리 풍천원에 남은 철원성(궁예도성)이다. 철원성은 DMZ 안에 속해 남북 모두의 접근이 제한되는 절묘한 위치에 놓여있고 도성의 한 가운데를 남북의 군사분계선이 지난다. 6·25전쟁으로 철원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며 철원성 일대에 다수의 지뢰가 매설돼 접근도 쉽지 않다. 그나마 2000년대 중반부터 접근이 가능한 일부 외성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 궁예가 세운 철원성의 비밀이 조금은 벗겨진 상태다.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 지역에서는 철원성의 발굴조사 현실화에 관심이 쏠린다. 태봉국의 실체와 당시 주민들의 삶의 흔적을 확인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철원군은 철원성 남쪽 홍원리 남방한계선 인근에 태봉국과 궁예를 주제로 한 '궁예태봉국 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있다. 3만7,000㎡ 부지에 전시실과 방문자센터, 궁예영정 봉안 사당 등이 들어섰고 철원성을 20:1 규모로 축소한 대규모 조형물이 조성 중이다. 태봉국 연구에 힘써온 전문가들의 의견과 현재까지 확인된 외성과 내성, 궁성의 규모를 토대로 후삼국 시대 양식을 최대한 담아낸 궁성과 당시 주민들의 생활공간 등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올 9월이면 민간에도 공개되는 궁예태봉국 테마파크는 궁예의 꿈과 태봉구의 이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창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철원성을 최대한 복원하는 조형물 만으로 태봉국의 모든 진실을 알 수는 없지만 태봉국과 궁예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노력은 분명 의미 있는 첫 걸음이다.
철원은 여전히 태봉국과 궁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땅이다. 또 우리는 궁예와 태봉국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그렇기에 질문과 호기심의 가능성은 여전히 높고 이는 역사적 재해석의 출발점이 된다. 궁예와 태봉국의 실체를 철원성 발굴조사를 통해 마주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