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2025만해축전 전국고교생백일장]대상(국무총리상) : 얼룩의 미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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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별 안양예고 3학년

벌건 대낮에도 차분한 어두움을 유지하는 목조 건물의 은은한 난색 조명을 받으며 불상은 고운 빛을 띄었다 하나의 상임에도 매끄러운 선을 가진 부처의 모습은 손짓 하나와 입술에 올려진 미소까지 자비를 느끼게 만들었다. 라한은 불단 위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부처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그 절에 찾아갔다. 기도를 올리는 척 손을 모은 채 불상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꼭 부처의 무릎 즈음에 얼룩이 보였다. 그 얼룩은 하루가 지나면 말끔히 닦여 사라지기도 하고, 또 다음 날이면 두어개로 늘어있기도 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든 얼룩인지 습한 여름 날씨의 탓인지 몰랐으나, 오로지 불상을 관찰하고 바라보기 위해 절에 방문하던 라한에게는 어느새 그 얼룩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 즈음부터 라한의 눈에 함께 밟히기 시작한 것이 미타였다. 미타는 라한과 또래로 보이는 고등학생 정도의 아이였는데, 늘 잿빛 승복을 입고 빗자루를 든 채 절 구석구석을 쓸었다. 항상 인자한 얼굴로 절을 거닐던 스님에게 물어보니 미타는 그곳에서 키우는 동자승인 것 같았다. 라한은 스스로 이유를 모르면서도 그 절에 있는 불상과 미타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말 한마디 하지도 않고, 알기 쉬운 표정을 짓지도 않고 조용히 빗자루를 쥔 손만 움직이던 미타는 어느새 라한이 절에 방문하는 두 번째 이유가 되었다.

라한은 흔한 불심과는 다른 이유로 불상을 사랑했다. 난색 조명의 빛을 받아 홀로 외롭게 은은한 빛을 뿜는 불상은 라한에게 기묘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끔 만들었다. 오로지 불상이 아름다웠기에 라한은 그것을 사랑했다. 그 사랑은 미타를 비껴가지 않았다. 그 절에서 홀로 외롭게 보이는 미타. 이상할 정도로 말도 표정도 없는 미타. 그럼에도 항상 라한의 눈에 평온하게 비치던 미타. 라한은 무의식에 미타에게서 불상을 찾았다. 미타가 예의 그 얼룩을 만드는 원인이자 그것을 닦아내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까달은 건 이후의 일이었다.
평소 방문하던 시간보다 조금 더 늦은 시간에 절을 찾으니 그곳에는 라한과 같은 방문객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불상이 위치한 법당의 문을 느리게 열자 불상 가까이 앉은 미타의 모습이 보였다. 법당 안에는 오로지 미타 한 명만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라한은 저절로 숨을 죽였다. 미타는 아직 방문객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불상 앞에 앉아 숨죽여 울고 있었다. 그리곤 소매를 끌어 얼룩이 묻은 불상의 무릎을 문질러 닦다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불상의 발치에 침을 모아 뱉었다. 평소 지나가며 보던 것과 다르게 미타는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한은 문 뒤에 숨어 미타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았다. 동시에 불상에 생기는 얼룩이 미타의 침이라는 사실도, 그걸 닦는 게 미타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어째서, 라는 물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전에 라한은 법당의 문을 완전히 젖히고 뛰쳐나가 미타의 손목을 잡아챘다. 라한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미타가 놀라 넘어지며 그들은 바닥을 뒹굴었다.

미타의 손목은 생각보다 얇았고 생각보다 차가웠다. 라한은 바닥에 넘어진 미타의 팔을 잡아 당기며 왜 불상에 얼룩을 남겼느냐고 다그쳐 물었지만, 대답 대신 완전히 걷힌 미타의 소매 안쪽을 발견하고 놀라 입을 다물었다. 미타의 팔은 온통 멍으로 얼룩져 있었다. 누가 한 짓이냐고 물어도 미타는 고개를 돌려 법당 바깥을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라한이 쥐고있던 팔을 놓고 주춤주춤 일어서자 뒤늦게 일어나 앉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 다 똑같아. 저 불상도 절도 똑같이 더러운데,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하기는. 저 밖에서 네가 스님이라고 부르는 남자가 날 몇 번이나 때렸는지 알아? 모르겠지.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

미타가 앉은 자세 그대로 라한을 올려다보며 조소를 지었다. 그 스님은 분명 다른 사람들보다 더 깊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스님이 자기 또래의 아이를 몇 번이나 때렸다고? 라한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거가 누구 계십니까.”

법당 밖에서 인자한 목소리가 들렸다. 라한은 잠시 얼어 붙었다가, 곧 기겁하며 법당의 반대편 문을 열고 뛰어 그대로 절에서 도망쳤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미타는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미타의 둣모습이 라한의 마음속에 멍울같은 얼룩으로 남은 것 같았다. 그 얼룩은 부끄러움 같기도, 최책감 같기도 했다. 누군가 가슴에 침을 뱉어 얼룩을 남겼다는 생각에, 라한은 아주 오랫동안 불상과 얼룩과 미타가 있는 그 절에 찾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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