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전국 일반계 고등학교에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는 ‘학생 선택 중심 교육’을 표방하며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한 제도다.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일정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제도는, 자기 주도적 학습 역량을 키우고 진로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강원특별자치도(이하 강원도)의 현실은 이상과 동떨어져 있다. 특히 농어촌 소규모 학교가 많은 강원도에서는 교사 1명이 3~5과목까지 수업하는 등 제도의 정상적인 운영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교사 인력이다. 도내 상당수 학교에서는 한 교사가 공통과목과 진로선택과목을 함께 맡고 있고, 일부는 5과목을 담당하기도 한다. 수업 준비는 물론, 수행평가와 성적 처리, 생활기록부 작성 등 행정 업무까지 한꺼번에 떠안으면서 과중한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교원 수는 줄어드는데 과목 수는 늘어나니, 수업의 질 저하는 물론 학생 선택권 보장이라는 제도 본래의 취지는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 교육부는 교사 부족 문제의 대안으로 학교 간 연계 수업, 온라인 공동교육과정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강원도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할 때 이들 방안은 한계가 명확하다. 학교 간 거리가 멀어 연계 수업에는 물리적 제약이 따르고, 온라인 수업도 학교별 일과표가 달라 실시간 운영이 어렵다. 결국 교사 1인이 수업부터 행정까지 ‘만능’으로 움직여야 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다. 교육부가 예고한 2026학년도 강원지역 중등 교과 교사 선발 인원은 62명으로, 올해보다 절반 가까이 급감했다. 학생 수 감소에 따른 감원이라는 명분은 있을지언정, 과목 수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이는 교사 1인당 부담을 더욱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작 ‘학생 중심 교육’을 외치는 제도가 ‘교사 고통 중심 운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교육 당국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는 고교학점제 폐지 혹은 전면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그만큼 현재의 제도는 교육 현장의 실정을 투영하지 못하고 있고,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부담만 안기고 있는 셈이다. 특히 농어촌 지역에서는 제도의 정착보다 교사 확보가 먼저이며, 학생 선택권 보장 이전에 교사의 지속 가능한 교육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도교육청은 순회 교사 배치와 시간강사 활용 등을 통해 교원 업무를 경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근본 해법이 아니다. 단편적인 보완책으로는 지역 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역 여건을 반영한 별도의 교육모델 도입, 교사 수급 체계의 유연한 개선, 국가 차원의 예외적 지원 확대 등 보다 구조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