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4시 넘어 깼다. 일어나 인터넷을 켜고 신문들을 검색한다. 신문들의 기획 기사들은 AI에 대한 특집이 많다. 그림 전시 기사들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다. 정치 기사를 외면하지 않는다. 연예 기사를 읽는다. 어떤 영화가 만들어지는지 검색해서 예고편을 본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에서 어떤 시리즈물이 만들어지는지를 검색한다. ‘케데헌’에 대한 기사들을 챙긴다. 축구 기사를 찾아 명장면 영상을 본다. 마지막으로 우리 지역에서 나오는 신문을 꼼꼼하게 본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들어가 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보고 사야 할 책들을 사진 찍어 둔다.
책 순례가 끝나면 어제의 일기를 아침에 쓴다. 일기는 생각을 쓰기보다 세세한 일상을 쓴다. 자잘한 이야기들 속에 내 삶의 현장이 날카롭게 나타난다. 일기 쓰기가 끝나면 잠이 깨어 뒤척일 때 생각났던 내 일상의 첫 문장을 써 모은다. 이제 그동안 써 놓은 내 시를 읽고 손 볼 차례다. 나는 새로 낼 두 권의 시집을 늘 보관한다. 내년에 낼 시집은 2년 전부터 써 놓은 시들이다. 2년 정도 두고 익혀 가며 새 시집을 집중적으로 가다듬는다. 내가 써 놓은 시를 보기 전에 반드시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읽고, 새로 나온 시집들을 읽고 내 시를 보는 것이다. 견주어 보는 건 아니다. 세계를 내 시에 모은다.
오전 5시 반 넘으면 새들이 운다. 새들의 울음을 듣고 나는 우리 마을 새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해 낸다. 나는 그 새들의 태도와 자세와 표정을 안다. 파랑새는 늦은 봄, 우리 마을에 나타나 까치 집을 빼앗아 알을 낳고 새끼를 길러 간다. 꾀꼬리는 아름다운 몸을 가진 새다. 봄에 오면 새잎 핀 우리 집 뒷산에서 짝을 짓는 사랑놀이를 한다. 온갖 아양과 아첨을 떨어 가며 아름다운 비행 쇼를 선보인다. 솟구치고 곤두박질치다 밤나무 가지에 내려앉아 머리를 맞대고 부빈다. 그리고 둘이 집을 짓는다.
꾀꼬리들은 이렇게 운다. ‘덕치 조 서방 3년 묵은(먹은) 술값 내놔.’ 옛날에 덕치면(덕치면은 내가 사는 면이다)에 조 서방이 살았단다. 덕치면에는 술집에 많았다. 전주 객사에서 잠을 잔 관리들이 자기 부임지를 갈 때 임실군 강진면 갈담에서 잤다. 갈담에는 관리들이 자는 객사가 있었다. 갈담에서 순창을 가는 길은 번잡한 길목이었다. 덕치면에 ‘중원리’ 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는 엄청난 술집이 있었다. 중원은 일반인들이 잠자는 ‘객잔’이었다. 그래서 ‘중원’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그 많은 술집 중에 조씨 성을 가진 사람이 3년이나 술을 외상으로 먹다가 옆집에 어떤 여인이 술집을 개업하자 그 술집으로 옮겨버렸다. 배신당한 여인이 죽어 꾀꼬리가 되어 ‘덕치 조 서방 3년 먹은 술값 내놔’라고 운다. 지금까지 외상값을 갚지 않았는지, 꾀꼬리는 지금도 그렇게 울다가, 마을에 까마귀가 나타나면 까마귀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꾀꼬리들이 까마귀를 공격하면 물까치들이 또 떼로 나타나 까마귀를 협공한다. 파란 하늘에서 새까맣고 샛노란 새들의 싸움은 구경거리다. 결국 까마귀는 꾀꼬리에 쫓겨 산을 넘어 도망간다. 꾀꼬리들은 멀리까지 따라가며 공격한다. 그렇게 까마귀가 꾀꼬리들에게 당한 이튿날이면 어디선가 까마귀들이 떼로 마을에 나타나 큰 소리로 까악! 까악! 울며 새까맣게 지나간다. 그럴 때 마을의 숲은 잠잠하다. 푸른 하늘에 까만색 옷을 입은 큰 새들의 시위는 나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