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 봄내의 추억

이영림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전 춘천지검장)

멈출 것 같지 않던 한여름의 폭염도 절기의 변화 앞에선 성큼 다가온 가을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어 준 듯 합니다. 계절의 변화만 봐도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결국 모든 것은 원래 있어야 할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나라를 지키는 것은 권력을 가진 기득권 정치인들이라기보다는 상식적인 가치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단합된 국민들이었으니까요.

저는 작년 5월 16일 춘천지검장으로 부임하며 고향인 강원도에서 근무할 수 있는 감사한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부임하면서 다짐했던 것은 강원도의 도민들이 범죄로부터 보호받고 또한 정당한 수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검찰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노후된 청사 여건과 인력 부족 등 많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저를 보필하여 업무에 매진 해 준 춘천지검 구성원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제가 2003~2005년 원주지청 근무 당시 쓸개즙 강제 채취를 목적으로 반달가슴곰을 불법 사육하던 업자를 구속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업자의 구속보다 제게는 더 중요했던 문제, 즉 구조한 반달이의 채취 부위를 수술해 줄 수의학과 교수님을 찾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수술 실패에 대한 부담 때문에 많은 대학병원의 교수님들이 고사를 하셨는데 강원대 수의학과 교수님께서 흔쾌히 수술을 허락해주신 덕분에 반달이를 살릴 수 있었습니다. 제 마음 속에 은인으로 남은 교수님을 강원도로 다시 부임하면서 만나뵐 수 있었던 것도 개인적으로 너무나 큰 행복이었습니다. 우리 강원대학교 수의학과, 여러분들은 최고 중의 최고였습니다.

예전에 대구지검에서 근무할 당시 야근을 마치고 늦은 시각 택시를 이용해 귀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적지를 말하는 제 말을 듣고 택시 기사님이 제게 고향이 대구가 아닌 거 같다고 하길래 고향이 강원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기사님이 매우 반기며 본인은 강원도 전방부대에서 군복무를 하였었는데 같이 복무했던 전우들 중에 강원도 사람만큼 책임감 강하고 선한 사람들이 없었다며 강원도 사람들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강원도민들은 주인의식과 책임감, 공동체를 위한 마음을 간직한 분들입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잘 되는 나라와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춘천과 홍천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과 낙동강전투와 더불어 한국전쟁 3대첩 중 한 곳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자부심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8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강원도민의 이러한 희생과 공동체 의식이 있었기에 그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부임지를 옮길 때마다 직원들에게 자주 했던 말 중 하나가 “시간이 지나면 내가 어떤 중요 사건을 담당 했는지 보다 내가 누구와 함께 어떤 것을 함께 하였는지가 더 기억에 남는다. 좋은 분들은 귀하다, 귀한 만큼 그 수는 적다, 그 적은 수의 귀한 사람을 너가 만났다면 큰 행운이니 그 행운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강원지역의 청소년 선도와 보호 활동에 전념해 주신 전명준 범죄예방협의회장님을 비롯한 범방 위원님들과 범죄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구조와 회복에 힘써주신 이금선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사장님을 비롯한 범피 위원님들을 만나고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큰 영광이자 행복이었습니다.

개인주의를 넘어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기주의가 판치고 국가와 공동체의 가치와 상식을 도외시하는 풍조가 만연한 세상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하여 지역을 지켜주시는 좋은 어른들이 계신 것이야말로 강원도의 큰 에너지이자 저력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만큼 건강한 정신을 가진 좋은 분들이 계신 곳 강원도가 향후 더욱 발전하는 지역으로 발돋움 하리라 기원합니다. 그리고 강원도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셨으면 합니다.

강원의 역사展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