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압록강 2,000리를 가다]⑧조선족 양봉인 김룡운씨

꿀벌과 고향을 지키는 조선족 양봉인
압록강 산자락에서 25년동안 꿀 채취

◇중국 단둥시에서 벌과 함께 고향을 지키는 김룡운 양봉인을 만났다. 중국 단둥=김남덕기자

“이제는 벌이 내 생활이자 친구예요.”

폭우로 산사태가 이어진 단둥시 관천만족자치현.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고, 곳곳의 언덕이 무너져 흙먼지를 내뿜는 산골 마을 한켠에서 김룡운(70) 씨가 꿀벌을 돌보고 있었다. 대형 양철통 두 개가 놓인 작은 작업실에서 그는 꿀을 병에 담으며 취재진을 맞았다.

그가 사는 마을은 압록강 물줄기를 따라 자리한 조용한 산자락 마을이다. 대부분의 이웃이 떠난 지 오래지만, 그는 고향을 지키며 꿀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벌과 함께한 세월이 어느덧 25년. 2000년, 마흔다섯의 나이에 그는 생계를 위해 처음 양봉을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새벽부터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15년 동안 기와공장에서 일했지만, 생활은 늘 빠듯했다.

이후 심양으로 건너가 식당을 열었으나 가스 폭발 사고로 직원이 크게 다치면서 모든 책임을 지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은 그는 여러 일을 전전하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돈이라도 좀 벌어보자고 시작했는데 양봉을 하 보니 그 재미가 크더라고요. 이제는 벌들이 일하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중국 단둥시에서 벌과 함께 고향을 지키는 김룡운 양봉인을 만났다.

토종벌도 많이 길러봤지만 수익 등 여러가지 문제로 양벌로 전환해 꿀을 채취하고 있다는 김룡운씨. “아카시아꽃 피면 한 번, 피나무꽃 피면 또 한 번해서 일년에 꿀을 총 두 번 따요. 봄에는 아카시아가 피고, 여름엔 피나무가 만발하지요. 그때는 벌들이 쉴 틈도 없어요.”

한창 시절에는 벌통이 200통을 넘었고 연간 꿀 생산량이 7톤에 이르렀었다. 지금은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규모를 줄였지만 하루의 시작은 여전히 새벽 다섯 시다. 벌의 움직임과 소리로 건강 상태를 살피고, 여왕벌의 산란을 조절하며 병충해를 막는다. “아카시아꿀은 맑고 달콤하고, 피나무꿀은 진하며 쌉싸래한 맛이 있죠. 같은 산인데도 나무마다 색과 맛이 달라요. 자연의 이치가 참 신기해요.”

세월이 흐르며 그의 손끝에는 노련함이 배었다. 올해는 봄비가 잦아 수확량이 줄었지만, 그는 “자연이 주는 만큼 받는 게 도리”라며 담담하게 웃었다.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였다. 몇 해 전, 한국에서 일하다 귀향한 아내가 강가에서 그물을 걷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들도 장사를 위해 단둥을 떠나 지금은 혼자 지낸 지 3년째다. 외로움이 없느냐는 물음에 김씨는 미소 지었다. “벌이 있으니 괜찮아요. 이제는 벌이 움직이는 소리만 들어도 다 알아요. 이놈들이 내 친구고, 내 위로죠.”

단둥의 산자락 아래, 압록강 물길을 따라 자리한 그의 고향 마을. 비가 내려도 벌은 제 일을 멈추지 않는다. 김룡운 씨 또한 그 벌들과 함께 묵묵히 고향을 지킨다. 그의 온정은 떠난 이들이 남긴 빈자리를 채우며, 압록강의 물결처럼, 꿀의 향기처럼, 오늘도 쉼 없이 흘러간다.

중국 단둥시=홍예빈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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