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월요칼럼]2025 APEC정상회의와 한국 외교의 분기점

정구연 강원대 교수

경주에서 열린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한국 외교에 있어 한미·한중관계가 재구성된 분기점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자유무역, 디지털 전환, 지속 가능성 등 다양한 의제가 논의되었으나, 그 이면에는 한국과 미국과의 안보·경제·기술 통합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을 끈 것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결정이었다. 물론 이번 주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 장관이 방한하여 진행될 한미안보협의회 등을 통해 본 결정에 대한 후속 논의가 진행될 것인지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핵추진 잠수함 건조는 단순한 기술이전 혹은 연료공급 허용에 그치지 않고 미국 해양지휘체계와의 연결 수준 제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즉 양국 해군의 작전·탐지 능력, 데이터 수집 및 융합 등 다양한 영역으로의 협력으로 이어질 공산이 높아졌다. 이번 결정 이후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손에 넣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 끊임없는 협상 과정이 예상되지만, 궁극적으로 중국의 해양 굴기를 억제하고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선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APEC 정상회담 직전 타결된 한미 경제협력 패키지는 한미 양국의 경제적 통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이 미국 내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인프라 등에 수천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자, 미국은 관세 완화 및 첨단기술 협력으로 응답했다. 좀 더 구체적인 합의문이 확정되어야 하겠지만, 이러한 변화는 양국 산업 생태계의 통합과 양국 내 산업 환경 재편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한국 산업의 공동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후속 대비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로써 한미 관계는 단순한 안보 동맹을 넘어서 경제·기술·안보가 결합된 복합 동맹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의 산업·금융·안보 생태계가 미국의 표준과 규제, 그리고 공급망에 맞물려 통합되는 블록화를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으로 기술 접근과 시장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대미 의존도가 높아짐으로써 얻게 되는 자율성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한미 관계 변화와는 반대로 한중 정상회담은 관계 복원 수준으로 일단락되었다. 양국은 통화스왑, 서비스·투자분야 FTA 재가속화, 인적·문화교류 확대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한한령 해제나 서해 인공구조물 등 해양안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진전이 부재했다는 점에 있어 실질적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결국 이번 회담은 오랜 시간 부재했던 한중 정상외교를 재개하고 양국관계를 복원하는 상징적 제스처로서는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이 미국과 중국과의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보면, 2025년 한국 외교는 미국 중심 통합과 중국과의 관계 관리라는 포지션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APEC 정상회담 직전 조현 외교부 장관이 외신과의 인터뷰 도중 “한국은 미중 관계에서 중립적인 적이 없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현 정부의 전략적 입장을 보여준다. 이제 한국 외교는 동맹의 확장기와 자율성의 시험기를 동시에 맞이했다. 미국과의 협력으로 진영의 경계는 더욱 선명해진 반면, 중국과의 관계 복원과 경제적 헤징은 또 다른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APEC 정상회의 이후 한국이 스스로의 대외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 한국의 외교는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되었다. 한국은 미중 간 가교외교라는 목표에 천착하지 말고, 분야별, 기능별 자율성과 주권적 공간을 확보하여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질서를 견딜 수 있는 역량과 네트워크 확보에 우선순위를 두어야할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분기점을 맞은 한국 외교의 기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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