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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기본소득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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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땅 깊숙이 깃든 탄광의 그림자와 카지노의 환한 불빛 사이, 그 틈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인구는 줄고 공동체는 느슨해졌으며, 삶은 점점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런 정선이 이번엔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의 불씨를 들고 일어섰다. 강원랜드 배당금을 기반으로 한 정선군의 이번 실험은 단순한 수혜가 아니라 한 지역의 존립을 건 선포다. 매달 15만 원, 그 작지만 단단한 약속이 지켜질 때 ‘살아볼 만한 농촌’이라는 말도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사기(史記) 장량열전에는 “지혜는 충분하나 성공을 이루기에는 부족했다”라는 말이 나온다. 지금의 정선이 그러하다. 아이디어는 명료하지만 정부와 도의 책임은 아직 희미하다. 국비 40%, 도비 12%, 군비 48%라는 분담 구조는 이름만 시범일 뿐, 실행은 지방이 떠맡는 꼴이다. 재정 부담을 지방에 넘긴 채 효과만 기대한다면 그것은 실험이 아니라 회피다. 강원도 역시 기초자치단체의 어깨에 짐을 지우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석유 영구기금 배당으로 주민에게 매년 기본소득을 지급해 왔다. 땅은 얼어도 제 몫을 나눠 가진다는 믿음이 공동체를 지탱했다. 정선도 다르지 않다. 카지노 수익은 군민 모두의 삶을 지탱한 땅의 결과다. 그 배당이 마침내 주민에게 돌아온다는 건 ‘정의의 회복’이다. 그러나 제도는 감동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예산의 비틀린 저울은 제도의 무게 중심마저 흔들 수 있다. 똑같은 삶의 가치가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다르게 환산된다면, 그 제도는 유지될 수 없다. ▼이번 실험은 ‘2년짜리 이벤트’가 아니다. 성패는 정선군이 아니라 정부와 강원도의 태도에 달렸다. 이 실험이 진정한 모델로 전국에 퍼지길 바란다면 지금 정부와 도는 예산부터 다시 써야 한다. ‘무릇 뿌리가 깊어야 가지가 무성하다’고 했다. 더 많은 지원, 더 무거운 책임. 그 두 가지가 정선의 기본소득을 ‘시범’에서 ‘정책’으로 바꾸는 진짜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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