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국민 누구나 쉽고 편하게 의료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병원 문턱은 턱없이 높았다. 간단한 치료조차 금전적 부담이 커 병을 방치하거나, 중증질환은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생명을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국민이 지금 의료 혜택을 공평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짧은 기간에 성공적으로 사회보장제도로 안착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으며, 그 보험료로 소득과 관계없이 공평하게 보험 혜택을 받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의 보험료를 ‘눈먼 돈’으로 인식하고 의사나 약사의 명의를 빌려 불법으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면서 보험 재정을 편취하는 이른바 '사무장병원', '면허대여약국'의 폐해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현재까지(2024년 12월 기준) 불법 개설기관으로 흘러 들어간 재정은 무려 약 2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65세 이상 치매환자 98만여명(2023년 중앙치매센터 통계 기준)에게 1인당 약 306만원씩 간병비로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다.
'사무장병원'은 비의료인이 의료인의 명의를 빌려 개설·운영하는 불법 의료기관으로, 2009년부터 2025년 6월 말까지 밝혀진 건수만 1,775개에 그 피해액은 약 2조9,000억원에 이른다. 이러한 폐해는 선량한 국민이 낸 보험료를 갉아먹는 도둑 행위와 같아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부당이득이 잘 회수된다면 좋겠지만 이미 불법개설 및 환수 시점에 증여, 허위 매매 등으로 재산을 은닉하는 사례가 많아 실제 환수율은 8.5%에 불과하다.
불법 개설기관은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가 있어야 요양급여 환수처분이 가능하다(건보법 제47조의2). 하지만 경찰의 전문 수사인력 부족과 사건 우선순위에 밀려 수사의뢰 후 결과가 나오기까지 평균 11개월이 소요되다 보니, 불법 개설기관으로 흘러가는 요양급여 청구 비용을 조기에 차단할 방법이 없다.
공단은 사무장병원에 대한 전문 조사인력이 배치돼 있고 조사 유경험자만 200여 명에 달하며, 빅데이터를 활용한 불법개설 의심기관 분석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수사기간을 3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 시스템에서는 공단 조사자에게 수사권이 없어 계좌 추적이 불가하고, 방조자·참고인 등 관련자에 대한 직접 조사도 불가해 제한적인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다.
사무장병원은 수익 창출을 위해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 생태계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다. 국민이 낸 소중한 보험료를 수익원으로만 생각해 의약품 오남용, 일회용품 재사용, 과밀병상 운영 등 의료 질 저하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은 향후 최악의 상황이 예상되고 있다. 베이비부머 은퇴를 시작으로 은퇴자 급증과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인한 의료비 폭증은 매우 심각하다.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노인 진료비는 2022년 45조7,000억원으로, 2018년 31조8,000억원에서 불과 3년 만에 44%나 증가했다.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소득정산제 도입, 급여비 지출 효율화 등 개혁이 강구되고 있는데, 불법 개설기관 근절 역시 그 하나로 지출관리의 매우 중요한 과제다.
공단은 이러한 불법 개설기관 근절을 위해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현재 운영되는 행정조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수사기간을 줄여 부당이득을 신속히 회수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제도나 시스템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을 위해 보험자인 공단은 시스템 변화를 시도하며 불법개설기관이 근절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