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3일 밤 10시23분. 국가 전체가 얼어붙은 밤으로부터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이라는 구호 아래 비상계엄이 선포된 장면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또 그것을 지키는 제도적 장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낱낱이 드러낸 기점이었다. 국회와 정당의 활동이 일시 정지되고, 언론의 숨통이 조여지며, 시민의 기본권이 한순간에 법적 근거라는 외피 속에서 축소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우리 모두에게 민주주의의 기반이 상황에 따라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냉정하게 보여줬다.
1년 동안 우리가 학습한 것은 단순한 정치적 교훈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가 공유한 집단적 기억이자, 앞으로의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묻는 통렬한 질문이다. 민주주의는 단지 헌법 조문 속에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 각자의 감각 속, 제도적 보호장치 속, 권력을 감시하려는 사회적 자세 속에서 실질적으로 유지된다는 사실 말이다.
이번 계엄 사태를 통해 가장 크게 드러난 것은 자유와 권리는 우리가 평소에 체감하지 못할 만큼 익숙한 공기와 같은 것이면서도, 동시에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매우 섬세한 구조물이라는 점이다. 정치가 정지되고, 공권력이 확대되는 과정을 목격한 시민들은 ‘권리란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진실을 다시 읊조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학습은 이 사회가 결코 수동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민주주의는 대리인에게 전적으로 맡겨둘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그 대리인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위기라는 단어를 방패처럼 휘두르는 순간, 시민의 권리가 어디까지 위협받는지를 우리는 생생하게 확인했다. 정치는 이 1년의 경험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 민주적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 그것이 자동으로 민주적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제도는 설계된 순간부터 낡기 시작하고, 권력은 언제나 빈틈을 찾는다. 비상권한, 국가안전, 질서유지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적 절차가 우회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정치권이 스스로의 권한 구조를 재점검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따라서 정치가 배워야 할 첫 번째 교훈은 ‘권력의 자제’다. 두 번째는 ‘견제의 실효성’이다. 여야의 대립이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적 경쟁이 아니라 단순한 진영 싸움으로 축소될 때 위기 상황은 언제든 자의적 권한 확대의 발판이 될 수 있다. 견제가 실종된 정치에서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시민이다. 이는 정치권 모두에게 뼈아픈 경고다.
그렇다면 12·3 계엄 이후 우리 사회를 어디로 이끌어야 하는가. 우선은 제도의 복원력 강화다. 법률상 명시된 권한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민주주의적 가치와 충돌할 때 어떤 안전장치가 작동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계엄 요건의 명확화, 의회 기능의 보전 장치, 언론 자유의 절대성 강화 등은 더 이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필수적 개혁 과제가 되었다.
두 번째는 12·3 계엄 이후 우리가 확인한 것은 민주주의의 최종 보루는 결국 시민의 감각이라는 사실이다. 권력이 방향을 잡지 못할 때 시민은 연대와 감시를 조직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자유가 아니라, 권력에 질문을 던지는 자유여야 한다. 세 번째는 사회적 신뢰의 재구축이다. 위기 상황은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를 급격히 붕괴시킨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불신의 구조 위에서는 유지될 수 없다.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시민들이라도, 최소한의 공통된 민주주의 원칙에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비판과 토론은 분열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호흡이다.
12·3 계엄 1년의 시점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연약함과 동시에 그 회복력의 가능성을 함께 경험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위기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간다.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아니라 과정이며, 그 과정은 시민의 각성과 정치의 책임 위에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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