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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불법 소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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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에 오기 전에는 강원 지역 산불 피해의 아픔은 모두 동해안에만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국내 산불 재난의 시작으로 꼽히는 1996년 고성군 죽왕면 마좌리 산불이 발생하기 이전에,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사가 있었다. 모곡리는 해마다 3월19일이면 합동 위령제를 지낸다. 1989년 이날 숫산에서 발생한 산불을 끄기 위해 올랐던 마을 청년 6명이 숨진 날이기 때문이다. 이 중 4명은 의용소방대원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의용소방대의 날이기도 하다. ▼희생자 중에는 군에서 갓 제대한 20대 초반의 청년, 불과 10개월 된 딸을 두고 숨진 30대 청년도 있었다. 올봄에 치러진 위령제에 갔다가 10개월 된 딸이 어느새 30대 후반의 청년이 돼서 아버지의 묘소 앞에 술을 올리는 모습을 봤다. 강원도 산불의 가장 큰 아픔이 저 청년의 삶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청년은 “산불의 원인이 같은 마을 주민이 쓰레기를 태우다가 나온 불씨였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같은 원인으로 산불이 발생하니 허망해요”라고 말했다. ▼최근 10년간 국내 산불 원인 통계 자료를 보면 입산자에 의한 실화가 31.2%, 쓰레기 소각이 12.4%, 논·밭두렁 소각이 11% 순이었다. 산불이 확산되는 원인은 기후 변화, 강풍 등 다양하지만, 불이 시작되는 원인은 결국 ‘부주의’였다. 그토록 수많은 산불 재난을 겪고도, 피해자들의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 사회에서 부주의는 반복될 뿐이다. ▼산불 조심 기간인 요즘, 전국의 시·군은 불법 소각 행위 단속이 한창이다. ‘적발 시 선처 없는 엄정 대응’을 선언하기도 했다. 불법 소각 행위는 적발 시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지자체 산불 방지 인력이 농가들의 영농 부산물 파쇄 작업을 지원하기도 하니, 당근과 채찍이 모두 동원됐다. 하지만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산불로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은 이들의 아픔을 기억했으면 한다. 또다시 부주의로 산불이 발생한다면 “허망해요”라고 말할,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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