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820m 고향집 호롱불 밑에서 밤새도록 공부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태백이 저에게 준 힘으로 지금은 철(鐵)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철의 의사'가 됐네요, 하하"
4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만난 태백 출신 김기하 태성열처리 연구소장(금속재료 명장)은 얼굴은 무척 밝아보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마련한 산업역군 초청 오찬행사 참석을 위해 경남 창원에서 새벽같이 상경한 터였다. 2006년 금속재료 명장으로 선정된 그는 47년간 열처리 직종에 종사하며 각종 방산 제품의 첨단 열처리 공정 국산화를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날 오찬에 초청됐다.
김 명장은 이 대통령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오찬을 하며 "우리 산업의 근간이 되는 뿌리기술이 좀 더 발전하고, 더 많은 인재가 육성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제도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이 대통령은 "산업 역군들 덕분에 우리가 기술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금속재료 명장은 국내에 65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고도의 기술을 엄격하게 심사받아 연간 선정되는 인원도 10여명 안팎으로 매우 적다. 김 명장은 그 중에서도 육·해·공군의 무기와 각종 항공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의 열처리 기술 노하우를 가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김 명장은 "태백시 통리라는 화전민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님이 감자, 콩, 수수 농사를 지으시면서 저희 6남매를 키우셨다"며 "다들 형편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라 제가 우리 동네 태백기계공고 1호 진학생이었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이어 "어렵게 학교에 진학했으니 꼭 성공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고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졸업 직후 대한중기라는 당시 최고 기업에 입사해 뿌리기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명장이 입사할 때만 해도 서울에 있던 대한중기는 정부의 방위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창원공단으로 이전, 현대위아로 사명을 바꿨다. 김 명장도 처음에는 제강 주조 업무를 하다가 창원에 내려가면서부터는 좀 더 세밀한 작업을 요하는 열처리 부분을 전문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김 명장은 "제가 하는 일은 한 마디로 철의 체질을 개선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철을 여러 모양으로 만들고, 오래 견딜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라 우리끼리는 '철의 의사'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 창원기능대학에 진학해 이론과 실무를 함께 배웠다. 정년을 모두 채우고 나와 이제는 중소기업의 연구소장으로서 뿌리산업에 종사하는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요즘은 뿌리산업 분야가 어렵고 힘들어 기피하는 이들이 많은데 정부 차원의 대책이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김 명장은 "고향인 강원도는 항상 어머니 같은 따뜻하고 포근한 곳"이라며 "강원도에 일자리도 많아지고, 관광도 활성화 되어서 발전했으면 한다. 저 역시 고향을 위해 진로 지도 등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