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3일, 한국 현대사에 전례 없던 비상계엄 선포는 정치권과 행정부 전반에 걸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특히 공직사회는 명분도 절차도 없었던 조치에 의해 무력감을 경험했고, 이후 1년 가까이 국정과 도정은 공회전만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충격에서 벗어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직사회의 역할과 자세를 재정립해야 한다. 위기 상황일수록 공직사회가 더욱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는 분명히 얻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은 정치를 실종시켰고, 이는 곧바로 지역 현안사업의 지연으로 이어졌다.
강원특별자치도가 기대했던 연말 국비 예산 증액은 수포로 돌아갔고, SOC 장기계획 발표, 강원특별법 개정안과 같은 중대한 지역 정책들은 표류 상태에 빠졌다.
이처럼 정치의 마비는 지방정부의 정책 실행력에도 연쇄적 타격을 줄 수밖에 없음을 명확히 보여줬다. 정권 교체와 조기 대선이라는 정치적 격변 이후에도 여야의 극한 대립이 계속되며 행정의 일관성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일수록 공직사회의 역할이 더 절실하다. 정치적 공백을 최소화하고, 주민들의 삶에 필요한 행정을 지체 없이 수행하는 것이 공직사회의 존재 이유이다. 계엄 이후 공직사회를 가장 크게 바꾼 제도적 변화는 ‘복종의 의무’ 폐지다. 이는 1949년 국가공무원법 제정 이래 76년 만에 이뤄진 중대한 전환점이다. 부당한 명령에 대해 공무원이 스스로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은 민주적 행정 원칙을 강화하는 진일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공직자의 판단력과 윤리성, 그리고 책임감을 한층 더 요구하는 결과로 연결된다. 정확한 기준 없이 개인 판단에만 의존할 경우 복지부동이나 무사안일로 흐를 위험도 존재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부당 명령 판단 기준과 행동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세우고,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일선 공무원들이 위기 상황에서도 균형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점은 공직사회가 그간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움직이지 않았는가’다. 계엄에 대한 법적·정치적 평가와는 별개로, 국민은 혼란의 와중에도 생활 현장의 최전선에 있어야 할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는 듯한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정책 실행은 뒷전으로 밀렸고, 이는 주민의 삶의 질 저하로 직결되었다.
공직사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 전체의 이익과 법치주의 수호라는 대원칙 아래에서 흔들림 없이 작동해야 한다. 특히 지역 발전의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지방정부는 중앙정치의 변동에 좌우되지 않고 지역 현안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추진력을 갖춰야 한다. 행정의 전문성과 중립성,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첫걸음이다. 계엄의 상처에서 회복하는 수준을 넘어 이를 계기로 더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행정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