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속도로가 개통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반세기, 험준한 백두대간을 뚫은 이 길은 강원도를 교통 오지에서 수도권 1일 생활권으로 편입시키며 산업화와 관광의 대동맥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50년 전 뚫린 길이 물리적인 ‘아스팔트 길’이었다면, 앞으로 강원도가 깔아야 할 길은 데이터가 빛의 속도로 오가는 ‘디지털 고속도로’여야 한다.
최근 열린 ‘영동고속도로 개통 50주년 기념 도로 혁신 포럼’에서 정창수 전 국토부 차관이 던진 화두는 강원특별자치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다. 정 전 차관은 강원 영동권이 미래 산업의 핵심인 ‘데이터 센터’ 유치의 최적지임을 역설했다.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시대를 움직이는 심장은 데이터 센터이며, 이 심장을 뛰게 하는 필수 조건은 막대한 ‘전력’과 ‘냉각수’, 그리고 ‘광케이블망’이다.
놀랍게도 강원도는 이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그것도 이미 갖추고 있다. 강릉, 동해, 삼척의 대규모 화력발전소에 인근 울진 원전까지 포함하면 동해안권은 약 17GW에 달하는 막대한 전력을 생산한다. 송전 제약으로 수도권으로 보내지 못하는 잉여 전력을 지역 내 데이터 센터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타 지자체가 흉내 낼 수 없는 압도적 경쟁력이다. 여기에 동해안의 차가운 ‘해양심층수’는 데이터 센터 전력 소모의 40~50%를 차지하는 냉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친환경 솔루션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광케이블망’ 구축의 효율성이다. 데이터 센터의 생명선인 광케이블을 설치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땅을 파헤치거나 송전탑 문제로 갈등을 빚을 필요가 없다. 이미 뚫려 있는 영동고속도로와 KTX 철도 노선을 따라 케이블을 포설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는 토지 보상과 민원을 건너뛰는 가장 경제적이고 빠른 방법이다. 부산과 태안 등지로 들어오는 국제 해저 광케이블을 수도권으로 연결하는 데 있어, 강원도의 고속도로망은 호남권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데이터 지름길’을 제공한다.
상황이 이처럼 명확한데도, 현재 데이터 센터 유치 논의가 수도권이나 호남권 위주로 흘러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호남권이 신재생에너지(RE100)를 내세우고 있지만,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즉각적인 인프라 활용 측면에서는 강원도가 월등히 앞선다. ‘그린 에너지 전환’ 전략을 통해 해양심층수 냉각으로 탄소를 저감하고 점진적으로 신재생 비중을 높여간다면, 강원도는 글로벌 기업들이 탐낼만한 가장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데이터 허브가 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강원특별자치도의 결단과 집중이다. 단순히 기업이 오기를 기다리거나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정과 정치권은 데이터 산업을 강원도의 제1 생존 전략으로 삼고, 가용 가능한 모든 예산과 정책 역량을 이곳에 쏟아부어야 한다.
내년 강릉에서 열리는 ‘ITS(지능형 교통 시스템) 세계총회’는 절호의 기회다. 전 세계에 강원도가 자율주행 테스트베드이자 데이터 산업의 최적지임을 세일즈해야 한다. 도로는 과거이고, 데이터는 미래다. 이미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차량 옆으로 데이터가 빛의 속도로 흐를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강원도는 그 데이터 고속도로 위를 질주할 정책의 엔진을 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