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대한민국 사회는 통계적으로 놀라울 정도로 안전한 사회가 되었다. 교통사고와 산업재해 사망 확률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외부의 시선은 우리의 높은 안전 수준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거리의 시민과 일터의 노동자,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이 사회가 안전하다고 느끼십니까?"라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답을 얻기 어렵다. 대형 참사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고, 사회가 안전해졌다는 주장은 공감 없는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통계적 사실과 대중의 정서가 괴리되는 이 ‘안전의 역설’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 비밀은 바로 ‘사람의 가치’를 생각하는 우리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새로운 사회적 현실에 있다. 빈곤 탈출이 절실했던 과거에는 생명이 하찮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선진국으로 올라선 지금, 생명의 존엄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로 부상했다. 사람들은 이제 통계적 수치에 만족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를 원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우리가 접하는 일터의 중대 재해 비보는 우리에게 뼈아픈 성찰을 요구한다. 사람의 목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길거리와 일터에서는 억울한 죽음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하다 죽는 노동자 대다수가 열악한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위험하고 힘든 일을 사회적 약자에게 부과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우리가 진정한 안전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업들부터 사람의 목숨과 안전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안전은 경쟁력을 저해하는 성가신 규제가 아니다. 그것은 더 높은 수준의 ‘생존’ 조건이며 경쟁력의 원천이다. 회사와 공동체 모두를 포함하는 생태적 생존 개념으로 안전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비즈니스의 문법을 전환해야 한다. 가장 싼 업체가 아니라, 가장 안전한 현장을 약속하는 업체를 선택해야 한다. 안전 역량이 부족한 파트너와 손을 잡는 것은 시한폭탄을 안고 달리는 것과 같다. 총체적 안전 개념은 이제 기업의 필수적인 성공 조건이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들의 안전 역량을 높이는 것은 더 안전한 사회와 일터를 위한 근본적인 과제이며 미래를 위한 투자다.
혹자는 과도한 규제를 걱정하지만, 안전 확보는 기업에 대한 족쇄가 아니라 혁신의 발판이 되어왔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튼튼한 배와 새로운 항해술이라는 안전장치 덕분이었다. 스텔스 전투기의 핵심 기술 또한 조종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개발되었다. 인간이 구름 지구를 벗어나고 우주의 여행자를 상상하게 된 것은 생명을 지키는 안전 기술 덕분이다. 인류가 누리는 혁신의 혜택 대부분은 ‘더 높은 안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안전은 혁신의 장애가 아니다. 더 높은 비상을 위한 기회다. 지금 우리가 겪는 진통은 혁신을 멈추라는 신호가 아니다. 위대한 조직과 국가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전진했다. 확장된 인간 안전을 실현하는 것은 문명의 미래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 미래는 없다. 나의 안전이 너의 안전이기 때문에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노력은 진정한 선진국의 원동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