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권혁순칼럼]6·3 지선 시장·군수 출마 자격

도의원 16명-시군의원 25명,단체장 도전 준비 중
지역에 대한 종합적 분석과 해결 구상을 갖췄나
구체적 미래 비전과 실천력으로 평가 받아야

◇권혁순 논설주간

내년 6.3 지방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선거철이면 으레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이번 강원특별자치도의 경우는 그 농도가 유난히 짙다. 49명의 도의원 중 무려 16명이 자치단체장 즉 시장 군수출마를 준비 중이라는 보도는 이 지역 정치의 풍경이 ‘봉사’보다 ‘체급 상승’에 기울어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시·군의원도 다르지 않다. 16개 시군에서 무려 25명의 현역 의원들이 자치단체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 강원자치도는 수도권에 비해 늘 한 걸음 느리고, 덜 주목받는 ‘지역’이었다. ‘특별자치도’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실질적인 정책 권한은 아직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런 구조에서 자치단체장이란 자리는 단순한 행정 집행자를 넘어, 지역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설계하는 디자이너이자 협상가다. 그런 자리에 오르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역을 누구보다 깊이 알고, 뚜렷한 비전과 추진력을 갖춰야 한다.

체급 올리기 기회 돼선 안 돼

그러나 지금 출마 대열에 선 인물들 중에 과연 몇 명이, 지역의 미래를 설계할 청사진과 실천 능력을 갖췄는가. 선거철만 되면 슬그머니 자치단체장으로 눈을 돌리는 그 속내는 지역에 대한 헌신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체급 올리기’의 욕망으로 읽힌다. 현직 도의원은 자치단체장 선거에 나가려면 선거 30일 전까지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임기 중 이탈은 결국 유권자의 선택을 가볍게 만드는 행위다. 의정활동의 책임은 온데간데 없고, 출마 준비에 바빠 의회를 등한시하는 모습은 정치 불신만 키울 뿐이다.

지방선거가 총선을 향한 징검다리처럼 활용되는 현실도 문제다. 기초단체장이 되고, 이를 발판 삼아 중앙정치로 나아가는 행보 자체를 탓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출마의 동기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주민의 삶을 개선하려는 헌신이 아니라, 단순히 중앙 정치 진출을 위한 경력 관리라면 그 출마는 정당성을 상실한다. 더욱이 지방자치는 중앙 정치의 하위 기관이 아니다. 자치단체장은 지역을 책임지는 주권자의 위임을 받은 최고 책임자다. 그 무게를 체급 상승의 통로로 격하시키는 순간, 지역의 미래도 함께 가벼워진다.

정치는 곧 설계다. 이번 출마예상자들이 과연 자신의 지역에 대한 종합적 분석과 해결 구상을 갖췄나. 강원자치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군사보호구역을 품고 있으며, 수도권 용수 공급과 송전선로로 인해 각종 국책사업의 전초기지 역할을 해왔다. 환경 보전 규제로 인해 개발도 제한되고, 수도권의 ‘후방 기지’처럼 다뤄지는 현실에서, 지역 리더는 과거의 희생 구조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외교관이자 전략가여야 한다.

제대로 된 주민 목소리 대변

주민이 원하는 것은 행정 구호가 아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중앙정부와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실력 있는 대표자다. 문제는 출마예상자 중 상당수가 지역 개발의 비전은커녕 제대로 된 정책 하나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년간 무엇을 했는지조차 드러나지 않는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플래카드를 걸고 ‘시민을 위한 새로운 변화’라는 공허한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며, 주민은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역은 실험장이 아니다. 누구든 자치단체장이 될 수 있다는 식의 평등주의는 허상이다. 지역은 더 이상 누군가의 '경력 만들기'를 위한 들판이 아니다.

정치는 ‘출마 자격’이 아니라 ‘출마 이유’로 평가돼야 한다. 이 시점에서 유권자는 물어야 한다. 왜 당신은 이 자리에 도전하는가. 단지 ‘다음’을 위한 전략인가, 아니면 ‘지금’의 지역 문제를 해결할 대안인가. 출마자는 지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구상하는가. 그 구상이 단지 공약집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난 시간의 행보로 증명됐는가. 만일 그 질문 앞에 침묵하거나 얼버무리는 이들이 있다면, 그 출마는 '정치'가 아니라 '진출'일 뿐이다. 지금은 냉철한 질문의 시기다. 지역의 미래는 오디션이 아니다. 강원자치도의 자치와 민주주의가 진정한 궤도에 오르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선출직의 출마 자격은 비전과 실천력, 지역에 대한 애정으로만 허가돼야 한다. 그리고 선거는 그 적격자를 가려내는 유일한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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