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 대표 경제통으로 이재명 정부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며 '탕평 인사'로 기대를 모았으나 각종 논란으로 사퇴 압박을 받은 이혜훈 후보자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결국 지명을 철회했다.
국민 통합을 앞세워 이 후보자를 장관으로 발탁한 지 28일 만이다.
청와대 홍익표 정무수석은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숙고와 고심 끝에 이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홍 수석은 "이 대통령은 이 후보자에 대해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인사청문회와 이후 국민적 평가에 대해 유심히 살펴봤다"며 "이 후보자는 보수 진영에서 세 차례나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안타깝게도 국민주권정부의 기획예산처 장관으로서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어떤 의혹이 결정적인 낙마 사유로 작용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인사청문 과정에서 후보자가 일부 소명한 부분도 있지만, 그 소명이 국민적인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부분도 있다"며 "이런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지, 특정한 사안 한 가지에 의해 지명철회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다만 홍 수석은 "대통합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고자 하는 이 대통령의 숙고와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며 이번 지명 철회로 '통합 인사' 기조가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정 진영에 계신 분이 아닌, 전문성을 가진 분들을 폭넓게 쓰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는 그대로"라고 부연했다.
자진사퇴가 아닌 지명철회 방식을 택한 배경에 대해선 "처음 이 후보자를 지명할 때부터 대통령이 보수진영에 있는 분을 모셔 오는 모양새를 취하지 않았느냐"며 "인사권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취지에서 지명철회까지 한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23일 열린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이 후보자의 '원펜타스' 부정청약, 장남 연세대 특혜 입학 등 그간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질타가 이어졌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은 "오늘 보니 후보자는 계엄과 탄핵을 계기로 아주 철저하게 계몽이 되신 분 같다. 참 대단하신 분"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과 완전히 주파수가 일치하는 분이라면 여당에서 얘기하는 '레드팀'으로서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정일영 의원도 이 후보자가 밝힌 탄핵과 확장재정 인식 변화와 관련해 "탄핵도 그렇게 반대하다가 금방 찬성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확장재정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금세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원펜타스 아파트 부정 청약 의혹과 관련해 "청약 규칙에 미혼인 자녀만 부양가족으로 인정되지 않나. 그런데 사실상 혼인을 올렸다"며 "명백히 불법이다. 이 집을 내놓으셔야 한다"고 압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도 같은 의혹을 겨냥하며 "후보자 임명이 강행되면 이재명 대통령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부정청약, 부동산 투기, 갑질·고성, 불법 재산 증식, 부정입학, 엄마아빠찬스 마음껏 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최은석 의원은 이 후보자가 장남의 대입 전형을 '다자녀'에서 '사회기여자' 전형으로 번복한 데 대해 "후보자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고 비판했다.
공세가 점점 거세지자 이 후보자가 적극 방어에 나서는 모습도 자주 연출됐다.
민주당 정일영 의원이 부정 청약 의혹과 관련해 아파트를 포기할 용의가 있냐고 거듭 묻자 "네, 네, 네", "있다고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조승래 의원이 장남 특혜입학 의혹을 추궁하자 이 후보자는 "이런 말까지는 드리지 않으려 했지만, (장남은) 성적 우수자"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부정청약 의혹과 관련해 말을 자주 바꾼다고 지적하자 "말을 바꾸지 않았다"고 응수했다.
또 같은 당 박성훈 의원이 보좌진을 시켜 댓글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에 대해 이 후보자가 거짓 해명을 했다는 취지로 지적하자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았다"고도 했다.
자료 미제출을 문제 삼는 의원들도 있었다.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최초에 자료를 제대로 제출했다면 청문회가 미뤄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추가 자료를 요구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매우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국민의힘 측에서 회의장 좌석에 손팻말을 붙인 것에 대해서는 여야 간 입장이 충돌하며 신경전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좌석 모니터 뒤에 이 후보에게 제기된 여러 의혹을 지적하기 위해 '청문회장보다 경찰 포토라인', '야!!!!!!'라고 적힌 손팻말을 붙였다가 상임위 운영에 갈등 소지가 된다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의 지적에 이를 철거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이날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지명 철회하자 "당연한 결과"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청와대가 검증에 실패한 책임이 있다며 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최은석 원내수석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의 위선과 탐욕이 적나라하게 많이 드러났고, 제기된 의혹들이 일절 해소가 안 됐다"며 "지명 철회는 늦었지만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검증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보수 정당에서) 3선 의원을 했다고 해도 이 후보자의 도덕성과 자질 검증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볼 수 있고, 이번이 제대로 된 첫 번째 검증"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야당 간사인 박수영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보수에서 넘어갔다고 자진사퇴 기회도 안 주냐?"라고 비꼬면서 "'이재명 픽(PICK)'에 대한 검증 책임은 이재명에게 있다"고 썼다.
박 의원은 "지명 철회는 사필귀정이고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한 사과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며 "국민은 화가 났는데 엉뚱하게 보수 정당 탓을 한다"고 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민정수석실,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국토교통부 등을 총동원하고도 갑질 세평은커녕 증여세 탈루, 아들 입시 특혜, 부정 청약, 부동산 투기 등을 하나도 걸러내지 못했다"며 "후보자만큼 뻔뻔한 이 대통령 아닌가. '꼼수 정치'에 골몰하느라 검증은 하나도 안 했다고 석고대죄하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 후보자에 대한 수사와 청와대 후속 조치도 요구했다.
배현진 의원은 "이렇게 짧게 끝날 쪽박 드라마일 것을. 청문회를 보니 철회로 끝날 게 아니라 수사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고, 주진우 의원도 "아파트 청약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 당사자의 전입신고만 의존해서는 '제2, 제3의 이혜훈'을 못 걸러낸다"면서 "인사 검증 시스템도 새로 다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