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조선왕조실록·의궤 톺아보기]대중매체 속 실록이야기 ⑩영화 ‘왕과 사는 남자’(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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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록이 말하지 못한 단종의 나날, 청령포의 침묵을 깨우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4일 개봉하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이홍위·1441~1457)의 영월 유배 생활을 중심으로 한 서사극이다. 이 영화는 역사 속에서 빈칸으로 남아있는 영월 청령포(淸泠浦) 유배 시기를 상상력으로 채운 작품이다.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 기록에는 단종의 유배와 최후에 대한 이야기는 간단하게 남아있을 뿐,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자세하게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단종이 영월에 유배된 ‘역사적 사실’과 사약을 받고 사사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까지 치른 엄흥도라는 ‘실존 인물’을 등장시켜 영화의 얼개를 그럴 듯 하게 꾸며놓았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단종역의 박지훈 배우. 사진=영화사 제공

​​단종이 폐위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어린 국왕의 즉위와 그를 둘러싼 권력 다툼, 그리고 세조(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과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조선 초기의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만들어졌다. ​단종은 1441년(세종 23년)에 태어나 여덟살 되던 해인 1448년(세종 30년), 세종에 의해 왕세손으로 책봉된다. 세종은 건강이 좋지 않은 아들 문종의 뒤를 이을 적통을 확실히 하기 위해 일찌감치 단종을 왕세손으로 세워 왕위 계승 구도를 정리한 것이다. “생각하건대 원손(元孫) 이홍위(李弘暐)는 천자(天資·타고난 자질)가 숙성하고 품성(稟性)이 영특하고 밝은데, 올해에는 스승에게 나아가도 되겠으니 너를 명하여 왕세손(王世孫)을 삼는다. (세종실록120권, 세종 30년 4월 3일)”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단종(박지훈)에게 음식을 올리는 엄흥도(유해진)이 모습. 사진=영화사 제공

하지만 문종은 즉위 2년만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단종은 아버지 문종의 죽음을 뒤로하고 열두살, 어린 나이에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 즉위 직후 단종은 정치를 대신들에게 맡기라는 교서를 반포하면서 모든 사무를 의정부의 정승들에게 의지한다. ​특히 모든 조치는 의정부와 육조가 의논해 행하고, 육조에서 국왕에게 직접 보고하던 것을 의정부를 거쳐 보고하게 했다. 주요 관리의 인사 또한 의정부와 의논해 결정했다.

“어린 나이에 외로이 상중에 있으면서 서정(庶政·국가의 여러 방면에 걸친 행정·정무) 만기(萬機·임금이 보는 여러 가지 정무)를 조처할 바를 알지 못하니(중략)…모든 사무를 매양 대신에게 물어 한결같이 열성(列聖·역대 임금)의 헌장(憲章)에 따라서 간난(艱難·몹시 힘들고 고생스러움)을 크게 구제하기를 바라니…(단종실록1권, 단종 즉위년 5월 18일)”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사진=영화사 제공

대신들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왕권이 약화되면서 비극은 잉태된다. 단종은 아버지 문종의 죽음에 앞서 어머니(현덕왕후)마저 자신을 출산한 후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말그대로 고아 신세였다. 그의 뒷배가 되어줄 세력은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를 비롯해 집현전 학사 출신인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신숙주, 이개, 유성원 등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신들이 추천하는 인물에 황표를 붙여 왕에게 올리면 왕이 이를 낙점하는 ‘황표정사’라는 일이 이뤄지면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시 왕가 종친들의 위세도 상당했는데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이 생존해 있는데다 세종의 둘째아들 수양대군과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이들 중 수양대군은 조카 단종 지키기 대신 권력 찬탈을 선택한다. 정권 장악을 위한 계유정난(1453년)은 그렇게 시작된다. 형 문종이 세상을 떠난지 불과 1년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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