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춘추칼럼]이민의 기로에 선 한국

안톤 숄츠 독일 출신 저널리스트 컨설턴트

나는 지난 2년간 법무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민정책과 다문화 관련 사안에 대한 자문을 맡아왔다. 그 과정에서 조화로운 다문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그리고 한국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한국에 오는 이민자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에 대해 다양한 전문가들과 논의를 이어왔다.

한국은 오랜 세월 외부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나라가 아니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한국에 와서 정착하고자 하는 외국인은 많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시선을 받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현재 한국 인구의 약 5%가 외국 출생자이며 이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적 성공과 소프트파워의 확장은 다양한 배경의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정착하기를 원하게 만들었다. 급격한 변화는 수 세기 동안 비교적 단일한 사회구조를 유지해 온 한국에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민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한국 사회 곳곳에서 두려움이나 반감이 함께 감지된다. AI와 로봇의 시대에 과연 더 많은 외국인이 필요한가, 이민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게 될 것인가, 유럽에서 보아온 갈등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하는 질문들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 자체는 충분히 타당하며 곧바로 혐오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도와 정책의 언어로 전환하는 일이다.

나는 기술 발전이 제조업, 농업, 어업, 건설업 등에서 줄어드는 노동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육체노동은 이미 인기 있는 선택지가 아니며 일부 분야에서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한 회복이 가능하더라도 노동력 공백은 계속될 것이다. 한국은 결국 더 많은 외국인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 흐름은 단지 육체노동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세대는 일자리와 삶의 파트너, 더 나은 삶을 찾아 국경을 넘는 이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역시 세계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정책과 동맹은 바뀔 수 있지만 오늘날 사람의 이동 자체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이 선택은 단기적인 여론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간 한국 사회의 형태를 결정짓는 방향의 문제다. 불가피한 변화를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어떻게 관리하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 다문화주의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하느냐의 문제다.

미국과 독일을 비롯해 50개가 넘는 민족과 수백 개의 언어가 공존하는 중국까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들 대부분은 다문화 사회다. 애플, 아마존, 테슬라, 엔비디아와 같은 글로벌기업들 역시 이민자 혹은 이민자의 자녀들에 의해 창립되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이러한 사회들은 성장과 활력만큼이나 동시에 갈등과 긴장이라는 현실을 함께 안고 있다.

변화는 언제나 불편함과 긴장을 동반한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거부가 반복될수록 사회적 균열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삶은 본질적으로 변화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사계절이 분명한 이 땅에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새로운 것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은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고통스러운 과정이 따르더라도, 변화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글로벌하고 코스모폴리탄한 한국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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