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치프리즘]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성장'의 덫에서 ‘품격’있는 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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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빈 서울대 명예교수

◇임도빈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의 행복지수에 빨간불이 켜졌다. 조사 대상국 중 순위는 67위로 최하위권이며, 2012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힌 핀란드와 비교해보자. 1인당 국민소득은 핀란드가 약 5만5천 달러, 우리가 약 3만5,000달러로 2만 달러 정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핀란드에 갈 때마다 우리보다 기후가 척박하며, 외형적으로 훨씬 더 잘 산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소득 수준이 우리보다 훨씬 낮은 국가들이 행복지수에서 앞서는 경우는 허다하다.

우리는 서구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유독 불행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부유해질수록 더 불행해지는 ‘풍요의 역설’을 쉽게 목격한다. 부잣집일수록 상속재산 때문에 형제의 의(義)가 상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하늘을 찌를 듯한 ‘과잉 경쟁심’에 있다. 우리 사회는 ‘얼마를 가졌는가’보다 ‘남보다 얼마나 덜 가졌는가’에 집착하는 사회다. 국가가 나를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아니라, 타인을 경쟁과 위협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의 집합체가 되어버렸다. 남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메마른 자리에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다 보니,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매몰되어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풍요의 역설은 젊은 세대에게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경제적 궁핍을 경험한 구세대는 ‘재정 상태’를 주요 불행 요인으로 꼽지만, 가난을 모르는 Z세대는 ‘인생의 무의미함’을 1위로 선택했다. 태어날 때부터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압박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후보자들을 눈을 부릅뜨고 볼 지점은 바로 여기 있다. 성장 중심의 사고에 갇혀, 경쟁의 덫에서 신음하는 국민에게 적개심과 분노를 부추겨 표를 얻으려는 후보들을 경계해야 한다.

기업 유치나 예산 확보 같은 ‘외부자원 동원론’은 지역 간 경쟁심만 부추길 뿐, 공약(空約)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노벨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장애인에게 휠체어를 나누어 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근육을 기르고, 길 찾는 법을 가르쳐주는 등 그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힘’, 즉 역량(Capability)을 길러주어야 한다.

여기서 ‘장애인’을 신체적 약자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며 사회적 관계로부터 소외된 젊은 세대 전체로 확대해서 보자. 그리고 휠체어와 같은 물질적 지원보다 정신적·심리적 차원에서 보자.

특히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의 불행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외동으로 자라 관계 맺기에 서툰 젊은이들이 연애, 결혼, 취업을 포기한 ‘3포 세대’의 문제를 돈으로만 해결하려 해서는 답이 없다. 그들이 스스로를 가둔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할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관계 맺기’ 능력을 키워주고, 낯선 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만남의 날’을 지정하는 등 따뜻한 행정은 중앙정부보다 삶의 현장과 맞닿아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행복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적 구조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만드느냐에 따라 삶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처럼 끝없는 경쟁 속에서 피곤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품격 있는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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